“건축은 디자인을 넘어 삶의 질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문화비전코리아와 함께하는 청소년이 되고 싶어 하는 직업(8) 건축사

이하정 완승건축사사무소 대표 인터뷰

건축은 사람의 안전과 삶의 질을 직접 책임지는 일
완공 후 사용되는 긴 세월 동안 계속 평가받아

디자인만큼이나 사용성·유지관리 등 현실적 검토 중요
시간 지나도 남는 ‘내 작업’을 만든다는 성취감 있어

왼쪽부터 류창엽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학생과 이하정 건축사 ©문화비전코리아

현대는 수많은 직업이 존재한다. 2020년 발간된 ‘한국 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은 대한민국의 직업 수를 1만 2,823개, 직업명은 1만 6,891개로 보고했다. 그리고 이젠 인공지능(AI)과 로봇, 빅데이터 등 혁신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확산, 전 지구적 환경문제 등으로 직업군이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다. 기존 직업군이 빠르게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직업군이 빠르게 생겨나기도 하는 시대를 맞아 문화비전코리아와 본지가 청소년들이 되고 싶어 하는 직업군들을 조사하여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건축사는 디자인 감각 이전에 방대한 법규와 기술적 지식을 공부해야 하며, 도면 한 장에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직업이다. 또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감각보다 현장의 변수를 해결하는 끈기와 관찰력이 필수이다. 인공지능(AI)이 보조 도구가 되는 시대에도 최종적인 검증과 책임은 결국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땅 위에 자신의 철학이 담긴 공간을 남기는 일은, 그만큼의 치열한 노력을 쏟을 가치가 있는 숭고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사를 지망하는 학생으로서, 나와 같은 꿈을 꾸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배 전문가를 찾았다. 건축사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탄탄히 쌓아가고 있는 이하정 완승건축사사무소 대표를 직접 만나 이 직업의 본질과 준비 과정을 들어보았다.

-건축사가 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건축사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닙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노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내 이름으로 남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설계에 참여하며 도면이 실제 건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만든 결과물이 공간으로 남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생활한다는 점이 큰 보람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현장 경험을 통해 건축은 디자인을 넘어 사람의 안전과 삶의 질을 직접 책임지는 일임을 체감했습니다. 그 책임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건축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려는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 감각보다 중요한 것은 관찰력과 끈기입니다. 건축은 정답이 정해진 분야가 아니라 최선의 대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조정하는 과정입니다. 도면 하나를 수십 번 고치고 현장의 예기치 못한 변수를 해결해 나가는 집요함이 기본입니다.

여기에 더해 공간의 사용 방식을 읽어내는 관찰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건축은 종합 예술이자 기술입니다. 구조, 설비, 전기 등 여러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와 함께 법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분석력이 필수입니다. 인허가 과정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의해야 하므로,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고 풀어내는 소통 능력도 핵심 역량입니다.”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작품집’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을 설명하는 도구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드러나야 하며,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에 대한 논리가 명확해야 합니다. 화려한 이미지보다 평면, 단면, 동선 분석, 법규 검토까지 포함하여 설계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건축주의 요구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영했는지이며, 둘째는 대지의 형태, 주변 건물과의 관계, 일조 조건 등을 어떻게 분석했는지입니다. 결국 좋은 포트폴리오는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계로 풀어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건축사의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책임의 범위가 예상보다 훨씬 넓다는 점입니다. 건축사는 단순히 설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공, 공정, 안전 등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도면 한 장의 판단이 현장에서 그대로 실행되기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건축사에게 돌아옵니다.

또한 법규 해석과 인허가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행정기관과의 협의 과정에서 설계를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공사비 증가나 일정 지연이 발생하면 건축주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디자인, 법규, 비용, 일정까지 모두 고려하여 통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이하정 대표(오른쪽)는 건축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규모와 용도의 현장을 접하며 땅 위에서 건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일 때 이후 설계의 깊이도 달라진다”고 조언했다. ©문화비전코리아

-AI나 디지털 기술이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최근 AI를 활용하며 문서 작업과 초기 아이디어 발굴 속도가 매우 빨라졌음을 느낍니다. 보고서나 계획서 초안을 작성할 때 체계적인 문장 구성을 도와주어 시간 절감 효과가 큽니다. 시각적으로도 다양한 매스 형태나 외관 디자인 시안을 빠르게 확인하는 도구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실무의 핵심인 법규 해석이나 도면의 정확성에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AI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기준을 제시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임’의 문제가 큽니다. AI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지만, 건축은 판단 하나가 안전과 비용으로 직결됩니다. AI는 보조 도구로 활용하되, 최종 검증과 책임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합니다.”

-‘좋은 건축’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결국 ‘사용하는 사람이 편한 건축’이 좋은 건축입니다. 시각적인 미감도 중요하지만, 동선이 직관적이고 공간이 목적에 맞게 구성되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유지관리 측면도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엔 좋아 보여도 관리가 어렵거나 결로, 누수 같은 하자가 발생하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설비 접근성이나 마감재의 내구성이 고려되어야 진짜 완성도 있는 건축입니다. 건축은 완공 순간이 아니라 사용되는 긴 세월 동안 평가받는 것이기에, 설계자의 만족보다 사용자의 쾌적한 경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건축을 준비하는 학생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현장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도면만으로는 건축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도면상의 의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어떤 변수가 발생하는지 직접 목격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현장에서는 시공 방식, 공정 간 간섭 등 도면만으로는 체감하기 어려운 기술적 제약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해야 비로소 설계가 현실성을 갖게 됩니다. 다양한 규모와 용도의 현장을 접하며 땅 위에서 건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일 때 이후 설계의 깊이도 달라질 것입니다.”

-건축은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나요?

“건축은 사람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틀입니다. 합리적인 동선은 일상의 피로를 줄여주지만, 잘못된 구성은 사소한 불편을 반복적으로 유발합니다. 채광과 환기 역시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어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결정합니다.

또한 공간 구성에 따라 사람 간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소통을 유도하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집중과 휴식을 보장하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잘 설계된 건축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그렇지 못한 건축은 삶을 억누르게 됩니다. 건축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현대 건축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미지 중심의 디자인에 치우쳐 ‘현실적 완성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지는 점입니다. 외관 디자인이 강조된 나머지 시공 난이도가 과도하게 높거나 유지보수가 어려운 마감을 선택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하자가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건축은 완공 후 사용되는 동안 계속 평가받습니다. 처음의 화려함보다 사용성, 유지관리, 시공성, 법적 현실성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디자인의 독창성만큼이나 실제 사용 과정에서의 가치를 지탱해 줄 현실적 검토가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건축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건축은 생각보다 화려한 직업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문제와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설계 외에도 법규, 인허가, 시공 문제, 이해관계 조율 등 수많은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건물이 실제로 눈앞에 지어지고, 땅 위에 하나의 결과물로 남아 사람들에게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은 건축만이 가진 최고의 매력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내 작업’을 만든다는 성취감은 매우 큽니다. 이 직업이 요구하는 책임과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준비한다면, 그만큼 가치 있고 보람찬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류창엽 SJA Jeju 11학년 (문화비전코리아 학생회원)

-앞으로 어떤 건축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과하지 않지만 오래가는 건축’을 지향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사용자에게 한결같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 유지관리가 용이한 실용적인 건축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신축 중심에서 리모델링과 유지관리로 시장이 확대될 것입니다. 무조건 새로 짓기보다 기존 건축물을 분석하고 개선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중요해질 것입니다. 기존 건축의 가치를 살리면서 현재의 기준에 맞게 성능을 개선하여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건축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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