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 연구는 직장을 그리스도인의 사적 생계 공간이 아니라 공공선, 조직문화, 자원 배분, 관계와 윤리가 교차하는 공적 영역으로 규정하고, 일과 신앙 통합 프로그램인 FWIA(Faith and Work Institute for All Nations)를 개혁파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연구는 규범적 신학 분석과 탐색적 사례연구를 결합하였다. 먼저 선행연구와 개혁파 전통의 일과 소명에 대한 이해를 검토하여 직장 공공성의 규범적 특성을 도출하였다. 이어 FWIA 교재와 운영 방식을 개혁신학 관점에서 검토하고 기여점을 평가한다. 이를 위하여 참여자 200명의 설문응답을 토대로 FWIA가 그들에게 일과 돈에 대한 관점과 직장에서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제시한다. 그러나 본 자료는 편의표집과 자기보고 응답에 근거하며 사전-사후 비교나 행동 및 조직 변화의 객관적 지표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프로그램의 효과를 인과적으로 입증하지 않는다. 본 연구는 FWIA가 신앙과 직업을 통합하고 직장인의 공적 책임을 훈련하는 유의미한 교육 모델임을 제안하는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 현실과 윤리의 긴장, 조직 권력, 비정규직과 같은 구조적 문제까지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공공신학, 일의 신학, 소명, FWIA, 일터영성, 한국교회
1. 들어가며
한국교회의 위기는 교인 수 감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배와 교회 활동에서 고백되는 신앙이 직업 수행, 경제활동, 권력 사용, 조직 관계와 시민적 책임으로 충분히 번역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26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조사에서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0%,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로 나타났다. 이 조사가 신앙과 직업의 이원론을 직접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공적 신뢰가 심각하게 약화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갤럽의 종교 인식 조사에서도 비종교인이 개신교를 가장 호감 가는 종교로 택한 비율은 6%로, 불교 15%, 천주교 11%보다 낮았다. 이러한 공적 불신은 한국교회가 무엇을 믿는가뿐 아니라 그 믿음이 사회적 관계와 제도에서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묻게 한다.
직장은 이 질문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공적 영역이다. 직장에서는 노동과 보상, 성과와 경쟁, 계약과 보고, 권력과 복종, 협력과 갈등, 돌봄과 소진이 동시에 일어난다. 본고가 일터의 영성(신앙)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에서 직장은 단순한 경제활동의 장소가 아니라, 관계·권력·평가·윤리·갈등·정체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대표적 공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2026년 4월 기준 취업자는 2,896만 1천여 명이며, 2024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1,859시간으로 주 40시간 근로자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53.1%).4) 성도들은 일주일중 5일,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일하며 보내지만, 목회자의 설교는 죄, 구원, 은혜의 교리에 집중된 형편이다. 교회 행사와 봉사는 강조하지만, 교회 밖 직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실하게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성도가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신학과 목회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본 연구의 동기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연구는 FWIA를 분석한다. FWIA는 일, 돈, 성공, 윤리, 관계 등의 주제를 직장 사례와 성경적 원리, 소그룹 나눔을 통해 다루는 일과 신앙의 통합 프로그램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FWIA를 성공적인 사역으로 선전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개혁파 공공신학의 기준으로 그 교육적 기여와 한계를 함께 평가하고, 참여자들의 자기보고 응답에서 어떠한 인식 변화가 나타나는지 탐색하는 데 있다.
이 글의 논지 전개는 첫째, 일과 영성에 대한 선행연구를 통해 본 고가 어떤 공백을 메울 수 있는지 기여점을 밝히고, 둘째, 개혁파 전통의 일과 소명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일이 왜 본질적으로 공적 행위인지 살핀다. 셋째, FWIA 세미나 내용을 개혁신학 관점에서 검토하고 참석자의 설문을 바탕으로 실천적 기여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한계와 함께 과제와 전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Ⅱ. 선행연구와 연구 방법
본 고의 주안점이 FWIA에 대한 논의이고, 지면의 제약으로 일과 영성에 관한 연구를 망라하기 어려워 2000년 이후 국내외 주목할 만한 연구를 중심으로 개관하고자 한다.
1. 해외 연구 동향: 일과 영성의 통합을 향한 신학적 전환
현대 기독교의 일터 신학(Theology of Work)과 일과 영성(Work and Spirituality)에 관한 연구는 서구 복음주의권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해지고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가 심화되면서, 신앙과 직업의 통합, 세속 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책임,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더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초기 연구들은 주로 종교개혁 전통에 기초하여 소명(vocation)의 개념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그 한계도 비판하였다. 폴 스티븐스(Paul Stevens, 1937~)는 종교개혁이 중세의 성직주의에 저항했지만, 성도의 일상에서 만인제사장적 삶을 구현하지 못했다며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 교회론보다는 구원론에 치중함. 2) 설교자(예배와 설교 주도)가 사제를 대체함. 3) 갱신에 부적합한 경직된 교회 구조. 4) 성직자 양성 위주의 가톨릭의 신학교 시스템 유지. 5) 하나님 나라 사역의 약화. 6) 평신도를 배제한 전임 사역자 안수 제도. 7) 적절한 평신도 영성 훈련 부재 등이다. 그는 직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사역의 장으로 보아 성도들이 직장과 시민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도 목회자의 사역 못지않게 중요한 영적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1956~)는 전통적인 루터의 직업 소명설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직업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며, 특히 실업 문제와 기계화에 따른 인간 소외 현상을 신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 대안으로 노동을 고정된 지위가 아닌 상황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로 재정의하여, 실업의 절망과 노동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성령론적 노동 신학을 제시한다. 나아가 종말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선한 노동의 결과물은 세상 끝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New Creation)’로 정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조직 갈등이나 경제적 압박 등 구체적 현실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팀 켈러(Timothy Keller, 1950~2023)는 1989년 뉴욕에 리디머 교회(Redeemer Church)를 개척한 후에 직장에서 부딪히는 일들로 고민하는 직장인들을 돕기 위해 2002년 ‘Faith & Work Center’를 설립한다. 그는 일의 목적을 자기실현이나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우리의 일을 연결하는 것’으로 재정의하며, 기독교인이 신앙과 일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직업을 통해 공동선(common good)을 증진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교인들 일상의 관심사에 성경적 원리를 탐색하고 공동체의 필요를 파악함으로써 일터 사역의 기반을 다지고, 본 고에서 다루는 FWIA 세미나의 초석을 놓았다. 최근 연구들은 켈러의 일터 신학이 뉴욕이라는 대도시 환경과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블루칼라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 1957~)는 1890년대 이후 ‘Faith at Work 운동’의 역사적 발전을 추적하며, 신앙과 일의 통합이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기업윤리와 경제권에도 폭넓게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고 논증한다. 밀러는 직장 내 영성, 기업윤리, 리더십, 조직문화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신앙이 개인의 내면적 경건에 머물지 않고 조직과 제도 속에서 구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신앙과 일의 통합을 윤리(Ethics), 표현(Expression), 경험(Experience), 풍요(Enrichment)의 Four E’s로 범주화하여 통합 모델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일과 영성 논의를 공공성과 사회변혁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일터 신학 선행연구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종합하면 해외의 선행연구들은 소명론, 창조신학, 성령론, 하나님 나라, 공공선을 기반으로 신앙과 노동의 통합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대다수 연구는 신학적 원리 정립과 목회적 적용에 집중되어 있으며, 실제 교육 참여자의 경험과 인식 변화를 분석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것이 본 고의 기여점이라 하겠다.
2. 국내 연구 동향: 일터 신학과 공공신학의 접점 모색
국내에서 일과 영성 연구는 2000년대 이후 로잔 운동, 선교적 교회론, 공공신학 논의와 맞물려 본격화되었다. 최형근은 로잔 운동의 일터 신학을 분석하면서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교회 중심적 선교 이해와 신앙의 이원론으로 꼽는다. 그는 교회가 성도들을 교회 프로그램의 참여자로 양성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일터 사역자로 세우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특히 로잔 운동이 강조하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자”는 비전 속에서 일터는 단순한 생계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선교 현장이라고 주장한다.
유경하와 김성욱은 탈종교화 시대의 일의 신학을 연구하면서 현대 한국교회의 위기를 신앙과 삶의 분리 현상에서 찾는다. 교회 안에서는 신앙인으로 살아가지만, 직장과 사회에서는 세속적 가치관을 따르는 이원론적 삶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의 신학은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신학적 다리가 되어야 하며, 교회에서 양육된 성숙한 성도의 믿음이 일상적 삶에서 드러날 때 한국교회의 회복은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김동연은 일터교회 사역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영성 성숙도를 분석한 실증연구를 통해 일터 사역에 참여한 성도들은 신앙 정체성, 직업 소명 의식, 공동체성 영역에서 유의미한 성숙을 경험했다고 제시한다. 이는 일터 사역이 단순한 직장선교 프로그램을 넘어 성도의 영적 성장과 삶의 통합을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근은 종교개혁이 이론적으로는 사제주의를 붕괴시켰지만, 제도적으로는 사제주의를 불식하지 못했기에 개신교는 여전히 계층화의 덫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오늘날 개신교는 평신도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는 했으나, 그 실천과 현실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비판한다.
최근 조성호(2024)는 일과 영성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면서 교회 중심 영성에서 생활 영성(lived spirituality)으로의 전환을 주장하였다. 그는 기독교 영성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가지며, 직장과 시민사회 속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는 일과 영성 연구가 개인의 경건을 넘어 공공신학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국내 연구 역시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대부분의 연구가 신학적 원리나 사역 모델을 제시하는 규범적 연구에 머물러 있다. 둘째, 실제 직장인들이 일터 신학 교육을 경험하면서 어떠한 인식 변화와 실천적 변화를 경험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셋째, 일터 영성이 조직문화, 사회적 책임, 공공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는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상황이다.
3. 본 연구의 기여점과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공백을 보완하고자 FWIA(Faith & Work Institute All Nations) 세미나 참여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특히 본 연구는 일터 신학을 단순히 개인적인 직업윤리나 경건의 차원이 아니라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가진다. 즉 직업을 통한 개인의 성공이나 만족을 넘어, 일터 속에서 공공선과 공적 책임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본 고의 연구 방법은 규범적 신학 분석과 탐색적 사례연구를 결합한다. 첫 단계에서는 개혁파 전통의 일과 소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FWIA 세미나에 대한 개혁신학적 평가를 시도한다. 둘째 단계에서는 FWIA 과정 참여자 200명의 기초정보와 개방형 자기보고 응답을 기술적으로 분석하였다. 참여자는 FWIA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편의표본이며, 무작위 표집이 아니다. 따라서 표본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고 대체로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연구는 이 자료를 한국 직장인이나 한국교회 전체에 일반화하지 않는다. 기초정보는 성별과 직업 상태를 중심으로 빈도와 비율을 산출하였다. 개방형 응답은 반복 읽기를 통해 의미 단위를 표시한 뒤, 유사한 의미를 묶어 범주를 구성하고 대표 문장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분석하였다. 분석 범주는 일의 의미, 돈과 성공의 재해석, 직장 태도와 윤리, 일터 속 자신의 정체성으로 정리되었다. 직접 인용은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익명화하였다. 본 연구는 사전-사후 비교, 대조군 비교, 장기추적, 상사나 동료의 평가, 조직 수준의 객관적 지표를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FWIA가 참여자를 변화시켰다”는 인과적 효과를 입증하지 않으며, 참여자가 프로그램 이후 응답한 관점과 태도의 변화 탐색에 주목하였다.
연구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FWIA는 직장을 어떤 의미의 공적 영역으로 이해하게 하는가? 둘째, FWIA의 교재와 학습 방식은 공공신학의 주요 기준에 어떻게 부합하며 어디에서 한계를 드러내는가? 셋째, 참여자들의 자기보고 응답에는 일, 돈, 성공, 직업 정체성에 관한 어떤 변화의 양상이 나타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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