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순종할 때 열리는 비전과 꿈
세월 속에 간직하고 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자
한반도의 중심으로 중원 고구려비와 중앙탑이 있는 충주, 음성군 음성읍과 충주시 신니면 경계에 솟아 있는 가섭산 중턱에서 필자는 살았다. 친구의 전도로 용원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이셨던 조준동 목사님을 오랜 시간이 지나 의왕시에서 뵈었다. 84세의 목사님 모습에서 그동안 열심히 사셨던 흔적들이 엿보였다. 학생시절에 뵙던 목사님은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지으셨다. 모처럼 고향교회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목사님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천자문 등 한학을 공부하셨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가족 중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었다. 철저한 유교 가문으로 인품과 학문을 갖추었던 그분의 부모님은 5남매 중에서 막내가 신앙 생활하는 것에 대하여 그저 지켜보셨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지방과 축문을 쓰게 할 정도로 서예에도 탁월한 소질을 갖추고 있었다. 조준동 목사님은 개성에서 태어났다. 부모님과 황해도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1.4후퇴 때에 가족들과 함께 월남하여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가족들은 충남에 정착하였고 그는 대전 지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재학 중 전도사 시절부터 목회사역을 하였다. 괴산, 청원, 충주, 광주 곤지암교회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교회성장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고 선교사역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그의 선친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이제 막내가 목회자로 살아야 하는 사명을 받았으니 우리 가족들은 유교를 버리고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말하자 후손들이 한 사람도 항의하지 않고 모두 순종하였다. 이처럼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세는 50여 명의 자손들이 100% 크리스천들로서 믿음의 명문가문으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조준동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하고 봉헌예배까지 드리는 영광을 얻었다. 노회 목사님들의 신뢰와 목회사역의 준비가 되었던 시기에 청주상당교회에서 청빙을 받았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던 중에 전혀 다른 용원장로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간의 목회에서 예배당 건축과 교회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필자는 그곳에서 조준동 목사님을 만나면서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예배를 드렸고 철저히 훈련을 받았다. 매년마다 개최된 부흥사경회에서 강사목사님들을 통하여 기도훈련과 말씀에 감동을 받았으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준비되어 갔다.
그 때 받은 로마서 15장 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비전과 꿈을 가지고 평생을 믿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학생시절에는 성경학교, 하계·동계수련회를 통하여 믿음이 성장했다. 교회 가까운 용원저수지 잔디밭에서 캠프 활동으로 역할극, 게임과 찬양 그리고 통성기도로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공동체의식을 다졌다. 당시 함께 했던 선후배들은 목회자, 선교사, 교수, 의사 그리고 교목, 사업가 등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소중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조준동 목사님의 장남은 충남대학교 의대를 나와 병원을 경영하고 있으며 장녀는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와 영어교사로 교편에 있다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막내는 중고등학교 교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는 교육자로 사명의 길을 걷고 있다. 이처럼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고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길을 가고 있는 믿음의 명문가문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대전의 큰교회에서 청빙을 받았다. 사역을 옮기는 준비가 다 되어갈 무렵에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하여 교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일부 교인들이 북한 출신이라며 청빙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유는 전임 교역자가 이북출신자로 덕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준동 목사님은 교회가 자신으로 인하여 분열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임을 포기하고 기도로 준비하면서 새로운 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운데 1989년에 곤지암교회로 부임하였다.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직시하고 자신이 총회 은퇴 적금을 해약해서 씨앗 헌금으로 3천여만원을 드렸다. 그리고 건축된 예배당을 헌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지역과 사회 교계 발전에 오랫동안 헌신하였던 지도자로 봉사하였고 광주에서 중심적인 교회로 성장하였다.
조기은퇴를 한 목사님은 3년여 동안 말레이시아 교민교회에서 사역하다가 귀국하여 지금은 안양시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는 북녘 땅에서 태어나 주님을 만났고 일찍부터 영혼구원의 사명을 받았다. 오랜 세월동안 훈련된 지성과 영성으로 목회와 선교 사역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필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명의 길을 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사역의 현장에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단단한 모습으로 인성과 지성 그리고 영성을 갖추는 사역자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운 고향의 은사를 만나 긴 세월 속에서 간직하고 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는 시간들이 참 행복하였다. 47년 전, 같은 공간에서 예배드리고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났던 소중한 목사님을 뵙고 주님의 복음을 지구촌에 더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야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 한국교회와 지구촌에서 예수 생명을 전하는 사명자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비전과 꿈을 가지고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최선(崔宣)박사
신문·방송 칼럼니스트
SBCM KOREA 대표
前) ALU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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