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셩 언(Sheng En)의 기고글인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사역하게 하신다’(We are where we are to minister)를 5월 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셩 언(가명)은 캐나다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다. 그는 암 치료를 받고 있는 자녀를 둔 중국계 가정들을 동행하며 돕는 사역을 시작했으며, 현재 목회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2018년 10월, 필자는 공항에서 세 명의 중국인 노년 성도들을 만났다. 세 사람의 나이를 합하면 265세였다. 그중 한 명은 신앙 때문에 27년 동안 감옥에 수감됐던 인물이었고, 출소 후에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날 그는 공항 출구 근처에 서서 자신이 읽지 못하는 입국 서류를 손에 든 채, 익숙한 얼굴 하나를 찾으며 사람들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찾고 있던 얼굴은 바로 필자였다. 필자는 그들의 짐을 들어주었고, 함께 기다려주었다. 거창한 단체나 사역 조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고 체계도, 프로그램도 없었다. 그저 하나의 만남이었다. 중국 교회의 고난을 몸에 새긴 세 명의 백발 노인들이 미국 공항 한가운데 서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 남성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야 신앙을 살기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출소 후에도 복음을 전했으며,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필자는 그 공항 게이트 앞에 서 있던 그의 모습 자체가 하나의 신학적 선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읽지 못하는 서류를 손에 쥔 채, 익숙한 얼굴을 찾고 있던 그의 자세 말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변두리’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이루신 사례들이 가득하다. 이집트의 요셉, 바벨론의 다니엘, 이방 궁정의 에스더, 핍박으로 흩어진 초대교회, 감옥에서 편지를 쓴 사도 바울이 그렇다. 그들의 태도는 “언젠가 중심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기서 일하고 계신다”는 태도였다.
즉, 디아스포라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야 할 자리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29장은 너무 자주 인용되어 오히려 그 낯설고 충격적인 의미를 놓치기 쉽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들에게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밭을 가꾸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단순히 구원만 기다리지 말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라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흩어진 자들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보내심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필자는 토론토와 뉴욕, 파리와 상파울루에 흩어져 살아가는 중국인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린다. 대부분은 영적 훈련의 일환으로 디아스포라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과 일자리, 안전, 자녀들의 미래 때문에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고 온 것들의 무게가 남아 있다. 나이 드신 부모, 익숙했던 교회 공동체, 그리고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기도의 언어 말이다.
필자의 휴대전화에는 지금도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세 살 혹은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어머니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수십 차례 항암 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상태였다. 아이도 어머니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장소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어린이 병원이었다.
아이의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마스크 위로 드러난 어머니의 눈빛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가족은 남중국에서 아이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왔다. 영어를 하지 못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병원 근처 모텔에 머물며 전기포트로 매일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치료가 있는 날 밤이면 어머니는 병상 곁에서 밤새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가 계속 무언가를 필요로 해서가 아니었다. 잠시라도 눈을 감았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사진에 대해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아는 사실은 누군가는 그 방 안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답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함께 있기 위해서다. 같은 언어로 말하고, 짐을 들어주고, 곁에서 기다려주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 중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서가 아니다. 낯선 땅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것이 무엇인지, 떠남의 외로움이 무엇인지, 한밤중 익숙한 냄새와 함께 기억이 밀려올 때의 고독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가 디아스포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동정이 아니라, 같은 깊이에서 내미는 손이다.
필자는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내륙선교가 시작된 도시에서 자랐고, 1992년에 세례를 받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필자는 중국교회가 상상하기 어려운 압박 속을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정교회 장로들의 조용한 용기, 국가가 남겨둔 작은 틈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성도들의 창의성, 그리고 압박 속에서도 진실을 말해야 했던 대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필자는 더 이상 그 압박 안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자유는 책임에서 벗어나는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책임이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중국 안에서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자유가 있다. 또한 그 안에서는 쉽게 동행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할 자유도 있다. 병실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있어줄 자유도 있다.
문제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자유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매우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구조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깥에 있는 우리가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돌아가는 존재라는 태도는 교만하며, 신학적으로도 잘못되었다.
중국 안의 교회는 이미 지혜와 회복력, 그리고 많은 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 속에서 단련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정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작고, 어쩌면 더 신실한 것이다. 바로 함께 걸어주는 것,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거리와 환경의 차이를 넘어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필자가 라과디아 공항에서 자신이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를 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에게 익숙한 얼굴이 필요했던 그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준 것뿐이었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그 남성은 감옥이 그의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공항 출구에서도 복음을 전할 사람이었고, 동시에 군중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고 있던 사람이었다.
결국 신학적 위치는 지리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여기 서있는 자리에서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여기’에서 사람들을 보내시고, 중요한 일을 맡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