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해 질 무렵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2번 출구 앞에서는 퇴근길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특별한 거리 공연이 열렸다. 분주하게 오가던 사람들 사이로 권진원의 ‘Happy Birthday to You’가 울려 퍼지자 현장 곳곳에서는 박수가 이어졌고, 일부 시민들은 공연장 주변에 머물며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는 자살 유족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배진희 씨였다. 이번 공연은 기독교 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가 진행하는 ‘마음이음 예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배 씨에게는 14번째 버스킹 공연이었다.
배 씨는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객들에게 담담한 인사를 전했다. 그는 “이번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며 “결국 말보다 노래로 여러분을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음악이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삶과 상실의 시간을 지나며 만들어진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배 씨의 노래에는 가족을 잃은 깊은 상실의 경험이 담겨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암으로 떠나보낸 데 이어, 이후 동생과 아버지까지 자살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노래로 전하고 싶었다”며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작은 다리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자작곡과 대중가요가 함께 이어졌다. 배 씨는 ‘산책’, ‘엄마 난’, ‘너의 시간을 이어갈게’, ‘끝나지 않은 편지’ 등을 차례로 부르며 관객들과 호흡했다. 첫 곡으로 부른 ‘산책’에서는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된 관객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합창처럼 이어졌다.
공연이 이어질수록 현장의 분위기도 점차 깊어졌다. ‘엄마 난’에서는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도의 감정을 담아냈고, ‘너의 시간을 이어갈게’와 ‘끝나지 않은 편지’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배 씨는 공연 도중 “상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소망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에게는 깊은 울림으로 전해졌다.
이날 현장에서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시민들의 모습도 이어졌다. 공연 내내 자리를 지키며 눈시울을 붉힌 한 70대 남성은 오래전 아들을 잃은 자살 유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런 활동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 알았더라면 아이를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며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버틸 힘이 된다”고 말했다.
라이프호프 측은 공연과 함께 자살 예방 상담전화 109가 적힌 안내문과 홍보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홍보물에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현장을 지나던 시민들은 이를 손에 들고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이번 신도림역 버스킹 공연은 단순한 거리공연을 넘어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의 메시지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공연이 열린 신도림역 일대에는 퇴근길 시민과 청년층, 중장년층이 함께 모여 노래를 듣고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이어졌다.
공연의 마지막 곡은 권진원의 ‘Happy Birthday to You’였다. 배 씨는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한동안은 생일 축하를 받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기쁘게 축하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러분도 자신을 축하받는 사람으로 여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래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일부 관객들은 공연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배 씨는 이날 버스킹에 대해 “공연이라기보다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래는 자살 충동을 멈추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만든 수단이었다”며 “벼랑 끝에 서 있던 내가 또 다른 벼랑 끝의 사람을 바라보게 해주는 다리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아울러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죽음을 멈출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