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교육, 유한한 삶의 끝에서 영원 바라보게 하는 영성 훈련”

교회일반
교회
노형구 기자
hgroh@cdaily.co.kr
조성돈·강진구 교수, 각당복지재단 35주년 세미나서 교회 죽음 교육의 신학적·실천적 대안 제시
각당복지재단 주최 '교회에서의 죽음교육, 그 필요성과 목회 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각당복지재단

고령화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신앙의 핵심 과제로 삼고, 성도들이 올바른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죽음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0일 각당복지재단 신관 각당홀에서 열린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창립 3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제자들은 현대 교회의 침묵을 비판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현대 교회가 죽음을 외면하게 된 배경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조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산업화 시대의 성공과 효율을 강조하는 ‘긍정의 신학’에 함몰되어, 죽음을 마치 불신앙의 증거나 실패의 상징처럼 여기는 풍토를 만들었다”며 “과거 강력했던 내세 담론은 자취를 감추고 오직 현세의 복락만을 구하는 기복적 신앙이 죽음에 대한 입을 닫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조성돈 교수는 죽음에 대해 "인간이 신앙 안에서 대면해야 할 가장 엄중한 본질"이라고 헀다. ©각당복지재단

이어 조 교수는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죽음의 백치시대’로 정의했다. 그는 “우리는 죽음을 병원과 장례식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격리한 채, 마치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기만하며 살아간다”라며 “성도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치매나 고독사처럼 ‘죽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독과 육체적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에 대해 아무런 신학적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교회가 죽음을 단순한 의료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경계했다. 조 교수는 “죽음은 의료 서비스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신앙 안에서 대면해야 할 가장 엄중한 본질이다”라며 “교회가 죽음을 신앙의 공론장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결국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 같은 세속적 가치관에 휘둘려 생명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선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죽음 교육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선 영성 형성의 과정임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죽음 교육은 유한한 삶의 끝에서 영원을 바라보게 하는 가장 숭고한 영성 훈련이다”라며 “교회는 이제라도 성도들에게 ‘당하는 죽음’이 아닌, 신앙 안에서 잘 준비하여 ‘맞이하는 죽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신학적 언어를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한국교회의 목회 방향이 지나치게 현세 중심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죽음을 기억하는 ‘메멘토 모리’의 정신이 사라진 교회는 생명력 없는 종교 활동으로 전락하기 쉽다”라며 “죽음을 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소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깨닫게 되며, 이것이 바로 복음이 가진 진정한 회복의 힘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교회의 역할을 조명했다. 조 교수는 “경제적 풍요가 죽음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관리 영역으로 옮겨놓았지만, 그 결과 인간은 더욱 극심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다”라며 “교회는 이 실존적 공포를 외면하지 말고, 죽음이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영광스러운 통로임을 선포하는 본연의 사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조 교수는 “죽음을 묵상하는 것은 결코 삶을 포기하거나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남은 생애를 가장 가치 있게 쓰겠다는 거룩한 결단이다”라며 “각당복지재단이 지난 35년간 걸어온 이 죽음 교육의 길이 이제는 모든 한국 교회의 보편적인 사역으로 뿌리내려 죽음의 공포를 소망으로 바꾸어내야 한다”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강진구 교수는 죽음 교육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인성 교육이자 영성 교육"이라고 했다. ©각당복지재단

두 번째 발제자인 강진구 교수(고신대학교)는 죽음 교육의 대중적 확산과 구체적인 목회 실천 방안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쳤다. 강 교수는 “이미 대중문화계는 ‘장례희망’ 퍼포먼스나 죽음을 다룬 영화 등을 통해 이 주제를 예술과 철학의 영역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라며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교회가 오히려 세상보다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로 죽음을 대하는 현실은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죽음 교육이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 교수는 “죽음 교육은 노인들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유아기부터 청소년,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각 발달 단계에 맞춰 전 생애에 걸쳐 시행되어야 하는 보편적 과업이다”라며 “어린 시절부터 생명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자기 삶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인성 교육이자 영성 교육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대적인 교육 방법론의 도입을 제안했다. 강 교수는 “딱딱한 교리 공부의 틀을 깨고 영화, 문학, 예술 등 성도들에게 친숙한 미디어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죽음 교육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라며 “이러한 문화적 접근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해소하고, 기독교 신앙이 실제 삶의 고통과 고민에 얼마나 밀접하게 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실천 도구로서 ‘엔딩노트’의 중요성도 언급되었다. 강 교수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자신의 임종 방식이나 연명의료 여부에 대한 가치관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돕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라며 “이러한 준비 과정은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주는 사랑의 선물이 되며, 본인에게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매듭짓는 거룩한 예식이 된다”고 강조했다.

교회에서의 죽음 교육에 관심을 갖는 참석자들이 세미나에 참여했다. ©각당복지재단

강 교수는 죽음 교육이 결국 현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교회의 죽음 교육은 ‘웰다잉(Well-Dying)’에서 시작해 결국 ‘웰라이프(Well-Life)’로 귀결되어야 한다”라며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오늘이라는 시간의 소중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교회가 성도들을 죽음의 공포에 매이지 않은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지역사회와의 연계 가능성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교회는 지역사회의 죽음 교육 거점이 되어 고독사 예방이나 유가족 돌봄 등 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라며 “죽음 교육을 통해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고 고통받는 이웃의 곁을 지킬 때, 한국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35년 전 이 땅에 죽음 교육의 씨앗을 뿌린 각당복지재단의 헌신이 이제 교회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꽃을 피워야 한다”라며 “모든 성도가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찬송하며 하나님의 품을 소망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사명이다”라고 제언을 마쳤다.

라제건 이사장이 인삿말을 전했다. ©각당복지재단

이날 세미나에 앞서 열린 개회식에서 라제건 이사장은 "35년 전 황량했던 이 땅에 죽음 교육의 씨앗을 뿌린 이후, 이제는 교회가 이 사명을 이어받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세미나에서는 재단의 오랜 노하우가 담긴 대학 교재 『죽음교육개론』(학지사)의 출판 기념식도 함께 진행되어 학문적 토대를 굳건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축사를 전한 천영태 목사(정동제일교회)는 "죽음 교육은 신앙을 삶의 끝자락까지 연결하는 가장 숭고한 목회"라며 재단의 사역을 격려했고, 민영진 교수 또한 "죽음을 기억하는 삶이 곧 지혜로운 신앙"이라며 창립 35주년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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