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화’ 구걸한 정권의 재탕이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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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포함한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인에 의한 북한 무인기 침투 재발방지대책과 남북관계 현안에 관해 이재명 정부의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간인 3명이 네 차례에 걸쳐 무인기를 북한에 침투시켰다”고 한 후 “지난 윤석열 정권의 무모한 군사적 행위에 대해 통일부장관으로서 북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했다. 정 장관의 브리핑은 민간인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 본인이 북한 측에 유감을 표명한 지 8일 만에, 그 유감 표명에 북한 김여정이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낸 지 5일 만이다. 북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로 판단했을 성싶다.

그런데 북한의 무인기 유감 표명 수용을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으로 연계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는 북한의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합의 위반이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평양에서 서명한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다. 지상과 해상 그리고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북한은 이 합의를 밥 먹듯이 위반했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4년 동안 북한이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가 17건에 달한다. 2022년 12월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까지 출몰하는 일까지 있었다.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로 사실상 파기 상태에 있는 군사합의를 복원하려면 최소한 북한의 재발 방지 약속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합의를 복원한들 북한에 다시 도발의 빌미를 주는 것밖에 안 된다.

정 장관이 지난 윤 정부에서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걸 “무모한 군사적 행위”라면서 깊은 유감을 표한 건 대한민국 국무위원의 신분에 맞지 않는 경솔한 발언이다. 무인기를 먼저 보낸 게 북한이란 건 모두가 아는 팩트다. 당시 서울 대통령실 상공에서 추적이 됐고. 여러 곳에서 북한이 보낸 무인기의 잔해가 잇따라 발견됐는데 이런 도발에 대해 언급 없이 지난 정부에 군사적 도발의 책임을 떠안기는 건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닌가.

남북관계 개선은 이재명 정부만이 아닌 온 국민이 바라는 사안이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관계엔 상호성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평화’를 구걸하며 일방적으로 고개를 조아리고도 “소 대가리”란 욕을 들었던 지난 문재인 정권의 재탕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