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의 전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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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재 목사(신광두레교회 평신도사역자훈련원 원장)
김흥재 목사(신광두레교회 평신도사역자훈련원 원장)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3:22~24)

우리는 통상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일이나 세상에서도 영적인 일과 관련된 일을 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에 노예들이 하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었겠습니까? 물 긷고, 장자 패고, 목욕탕 청소하고, 주인 시중드는 하찮은 일이고, 영적인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께 하듯이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도 바울이 주장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님께 하듯이 성실한 자세로 주어진 삶을 산다면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적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에게 영광을 얻는다든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결코 영적인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바꾸어야 할 페러다임은 이원론 주축의 신앙체계에서, 전인적인 신앙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종교적 영역은 거룩하고, 신령하며, 바람직하게 여기는 반면, 비종교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은 세속적이고, 육신적이며, 죄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5세기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가 오직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는 교황의 권위에 대한 반박으로 성경의 권위가 교황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음을 피력했습니다. 두 번째가 행위 구원에 대항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원리를 주장했습니다. 셋째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적 구분을 철폐하는 만인제사장 원리를 주장했습니다.

이 세 번째 원리에 근거해서 나온 네번째 원리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이 성직이며,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주어진 고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루터는 사제 계층이나 성직자들만이 거룩한 직분, 즉 성직을 수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직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도들의 직업이 대장장이 이든, 구두 수선공이든, 푸줏간 주인이든, 농부이든, 학생이든, 가정주부이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꼐로부터 받은 거룩한 직분과 소명을 받은 것으로 이해 해야 한다는 성경적 진리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루터에게 있어서 만인 제사장 원리는 만인 성직자론, 만직 성직론, 만인 소명론으로 확대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도 직업소명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Calling)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성직자만 거룩한 일이 아니라, 농부, 장인, 상인, 정치가 등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특정한 자리와 직분에 부르셨으므로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부르심 안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직업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사람마다 다른 재능과 환경을 갖고 태어나는데, 칼빈은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주어진 자리라고 보았습니다.

사실 노동은 인간의 타락 이전부터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타락 이후 노동에 수고와 고통이 주어져 힘들어진 면은 있으나, 노동 행위 자체는 원래부터 거룩한 일이기 때문에 칼빈은 직업의 목적을 개인의 성공보다 이웃 사랑과 공동선에 두었습니다. 칼빈의 직업소명론은 후에 막스 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직업 소명론을 지탱해 주는 신학적 원리는 성과속의 이분법에 대한 복음적 재해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당 건물은 거룩한 것, 성당과 떨어져 있는 일반 세상은 속된 것, 성당에서 먹는 음식은 성스러운 것, 일반 세상에서 먹는 음식은 속된 것이라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거룩한 것이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속된 것이라는 사상이 성도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미신적 성속론에 대항해 루터는 만유 거룩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보혈로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으며 거룩하게 성별된 그리스도인에게는 만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고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음식이 거룩한 음식, 속된 음식의 구별없이 주 예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부의 장소와 공간, 또는 특정한 때와 시간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공간과 시간이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일주일 중 주일만 거룩한 안식일이고, 다른 날들은 속된 날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복음적 정신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모든 시간, 모든 날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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