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새 형사법 승인… “노예 개념·계급별 처벌 명문화”

국제
중동·아프리카
이미경 기자
mklee@cdaily.co.kr
인권단체 강력 비판
미국의 20년 전쟁은 탈레반이 며칠 만에 재집권하면서 혼란스러운 종말을 맞이했다. ©Channel 4 News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의 서명을 거쳐 새로운 형사소송법을 승인하면서, 계급 기반 사법체계와 노예 개념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 전문가와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번 법이 적법 절차를 약화시키고 성별·종교·사회적 지위에 따른 특권 구조를 제도화했다고 우려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상원 외교위원장인 짐 리시 상원의원(공화·아이다호)은 SNS를 통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노예제의 복귀를 승인했다”며 “탈레반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미국의 국익에 반할 뿐 아니라 현지에서 복무한 군인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탈레반은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단체 라와다리(Rawadari)에 따르면 119개 조항으로 구성된 새 법전은 ‘자유인’과 ‘노예’를 구분하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회를 종교학자, 엘리트, 중산층, 하층민의 네 계층으로 나누고 동일 범죄에 대해 서로 다른 처벌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종교 지도자에게는 훈계 수준의 처분이 내려지는 반면, 하층민에게는 구금과 체벌이 함께 선고될 수 있다. 탈레반 관리를 모욕할 경우 태형 20대와 최대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하나피 학파 이슬람 법학을 떠나는 행위에는 최대 2년형이 가능하도록 했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한 법률 분석가들은 일부 조항이 종교를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온 여성에게 종신형과 반복적 체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조항은 남편이 아내를 심하게 폭행해 멍이나 골절이 발생한 경우에도 처벌을 15일 구금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처벌 규정에서 ‘자유인’과 ‘노예’를 구분해 명시한 점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노예 신분을 합법적 범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국제법은 모든 상황에서 노예제를 금지하고 있으나, 이번 법전은 이를 일반적 법적 지위처럼 다루고 있어 심각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새 법전에는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 오판에 대한 보상 청구권 등 기본적 법적 보호장치가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백과 증언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독립적 수사 절차 요건도 약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체벌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춤’이나 ‘부패한 집회 참여’ 등 모호한 범죄 항목을 포함시켜 당국이 폭넓은 재량으로 체포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로 인해 고문과 자의적 구금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유엔 관계자들은 이번 법을 두고 “성별에 기반한 아파르트헤이트”의 일환이라고 비판했다. 탈레반은 2021년 재집권 이후 여학생의 중등 및 고등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의 다수 직업 종사를 제한했으며, 전면적 얼굴 가림 복장을 강제하고 공원·체육관·미용실 출입도 금지해 왔다.

영국 전 총리이자 유엔 특사인 고든 브라운은 언론 기고를 통해 이러한 정책이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교육과 여성 인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일부 탈레반 고위 인사들이 해외로 이탈했다고 전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여성 언론인이 체포되거나 여성 체육시설 운영자가 구금되는 사례도 발생했으며, 일부는 유엔 인권 관계자의 개입 이후에야 석방됐다. 유엔 아프가니스탄 인권특별보고관은 새 형법 체계가 여성과 소녀에 대한 차별을 법적으로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해 7월 성별 박해 혐의로 아쿤드자다를 포함한 탈레반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일부 국가는 인권 개선 조건 없이 탈레반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유럽 국가들도 송환 협력 등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탄압 속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가정 기반 비공식 교육과 라디오 교육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여성과 학생들은 파키스탄과 이란 등 인접국 또는 해외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녹취에서는 탈레반 지도부 내부의 노선 갈등도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