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 의료진 250여 명, 조력자살 법안 반대 공개서한

“환자 안전에 중대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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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의 의사와 간호사, 보건의료 전문가 250여 명이 말기 환자의 의학적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에 반대하며 웨일스 의회(Senedd)에 공개서한을 제출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말기 환자(임종) 법안(Terminally Ill Adults (End of Life) Bill)’에 대해 입법 동의 거부를 촉구했다.

웨일스 의회 의원들은 오는 1월 20일(이하 현지시간) 이 법안과 관련한 입법동의안(LCM, Legislative Consent Motion)에 대해 표결할 예정이다. LCM은 보건·사회복지 등 이양 권한에 영향을 미치는 웨스트민스터 법안에 대해 웨일스 의회가 동의 여부를 표명하는 절차다.

비록 웨스트민스터가 웨일스 의회의 결정을 뒤집을 권한을 갖고 있지만, 웨일스가 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경우 정치적 파장이 커져 이양 정책 영역과 관련한 추가 수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아직 법률로 제정되지 않았으며 현재 영국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의료진은 공개서한에서 이 법안이 말기 환자에 대한 의학적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면서도 감독 체계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서한은 “조력 사망 서비스에 대한 독립적 감시 장치가 없고, 승인 결정에 대한 항소 절차나 고통받는 가족을 위한 구제 수단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서명자들은 또한 오랜 임상 경험을 근거로 법안이 규정한 말기 질환의 정의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오진이나 잘못된 정보로 인한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확한 예후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강압에 대한 안전장치 역시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서한은 강압이 대개 “은밀하고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안에 포함된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료진은 특히 완화의료(palliative care)의 만성적인 재정 부족 문제를 문제 삼았다. 충분한 완화의료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들이 사실상 ‘조력자살’과 ‘열악한 돌봄’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완화의료 전문의 빅토리아 위틀리 박사는 “현재 웨일스 인구의 4분의 1은 호스피스 병상을 이용할 수 없다”며 “이는 환자들이 진정한 선택권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괄적인 완화의료 체계를 먼저 구축하지 않은 채 국가가 지원하는 자살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은 웨일스에 적절한 접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웨일스 전 최고 의료책임자(CMO)인 디어드리 하인 경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노숙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취약 계층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압박받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공개서한은 “이 법안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웨일스의 이양된 자율성을 훼손하고, 환자 안전과 형평성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한다”며 “웨일스 의회 의원들은 이 심각하게 결함 있는 법안에 대한 입법 동의를 거부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