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지식이 나를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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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원장(목회심리상담전문가)
이경애 박사

기독교 신앙은 경전을 아는 것을 중시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죄와 구원, 심판과 종말에 대한 구속사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계시 되어 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감정에 도취 되거나 혹은 자신의 욕망을 가상(假想)의 신에게 투사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자기중심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은 특별 계시인 성서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지,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삶을 정성스럽게 살아낼 것인지를 다양하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의인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고(잠언 11장 9절), 복음서에서도 구원은 지식에서 기인함을 분명히 말씀하신다(누가복음 1장 77절).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기분에 휘둘리거나 혹은 타인을 비난하거나 상황을 탓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종교가 아니며, 배우고 깨닫고 행동하는 역동적인 변환이 과정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삶과 사회, 역사와 정치, 경제와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 입체적인 관심을 가지며 이 복음이 우리 전 인류의 삶에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지 열심히 고민한다.

그런데 우리는 앎의 과정에서 자칫하면 외부에만 관심갖기 쉽다. 예를 들어 국내, 국제 정세와 같은 외부적인 현상에만 치우치다 보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 갖지만, 이 세상에 내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만약 그 영향력이 나도 깨닫지 못하는 중에 선한 영향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덕스러운 행위가 되겠지만, 만약 나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미련하고 무지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비단 거창하게 대외적인 영향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까운 대인관계에도 이는 적용될 수 있다. 나 자신은 상처받고 기분이 상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만약 내 자신이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그 자신은 얼마나 무지한 상태에서 남을 탓하며 비난하는 일에만 몰두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과 상황을 인지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아는 데도 집중해야 한다. 심리학자 조셉(Joseph Luft)과 해리(Harry Ingham)가 같이 창시한 조하리 창(Johari Winsdow)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에는 나도, 타인도 아는 나 자신의 창(열린 창)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은 알지만 타인에게 은폐되어 있는 창(숨겨진 창)이 있고, 심지어 타인은 나 자신에 대해 알지만 나 자신은 알지 못하는 창(맹목의 창)이 있다고 한다. 만약 나 자신은 모르지만 타인은 나의 어투나 표정, 습관 등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않거나 혹은 나에게 그런 피드백이 있음에도 나 자신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러한 인간관계는 얼마나 빈약하며 초라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도 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미지의 창)이 다른 창보다 크다면, 우리는 얼마나 맹목적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투사(projection)와 타인의 생각이나 태도를 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내사(introjection)를 반복하며 원시적이고 미숙한 인간관계를 하게 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허둥대며 찾아다니는 공간의 개념이 아닌, 우리 마음에 있는 영적이고 심리적인 개념으로 말씀하신다(누가복음 17장 21절). 이는 우리 마음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가시적인 천국이 주어진다고 해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천국도 지옥은 단지 외부적인, 공간적인 것 뿐이 아니라, 내부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외부적인 관심을 가질 세상이 일이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신앙적으로 종교적으로 우리를 흔드는 일이 많이 있다. 외부적인 상황을 민감하고 야무지게 인지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내 안의 보이지 않고, 은폐되어 있고 자각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지식도 그만큼 중요하다. 이 자각의 영역이 커져서 열린 창이 확대되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도 그만큼 내게 경험되는 영적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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