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낙태 완충지대 첫 기소에 가톨릭 주교들 반발

“침묵 기도까지 범죄화 우려”
양쪽 고관절 치환 수술을 받은 75세 할머니를 체포하는 데 경찰관 네 명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Alliance Defending Freedom

스코틀랜드 가톨릭 주교들이 최근 도입된 낙태 시술소 완충지대 법률의 첫 형사 기소 사례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글래스고에 거주하는 기독교인 할머니 로즈 도허티(Rose Docherty, 75)가 ‘2024년 낙태 서비스(안전 접근 구역)(스코틀랜드) 법’에 따라 처음으로 기소 대상이 되면서 불거졌다. 해당 법은 낙태 시설 반경 200미터 이내를 ‘완충지대’로 지정하고, 낙태에 대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가톨릭 주교회의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이 현대 스코틀랜드에서 시민의 자유에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순간”을 의미한다고 지적하며, 법 조항의 광범위함과 모호성이 침묵 기도를 포함한 일상적인 신앙 표현까지 형사 처벌의 위험에 놓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허티는 지난해 퀸 엘리자베스 대학병원 인근에서 “강요는 범죄입니다. 원하신다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다가 체포됐다. 국제기독법률단체 자유수호연맹(ADF)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도허티는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않았으며 낙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도허티가 지정된 완충지대 내에서 두 차례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보고 있다. 도허티는 크리스마스 이전 열린 첫 재판 후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나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인 대화를 제안했을 뿐이다. 단순히 대화를 제안했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완충지대 법은 수년간의 논쟁 끝에 도입됐으며, 현재 스코틀랜드 전역 약 30곳의 낙태 시설에 적용된다. 이 구역 내에서는 말, 표지판, 또는 단순한 존재 자체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석될 경우 형사 범죄가 될 수 있다.

이 법안 지지자들은 해당 조치가 낙태 서비스를 이용하는 여성을 괴롭힘이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교들은 교회가 어떠한 형태의 괴롭힘도 지지하지 않으며, 기존 법률만으로도 위협적이거나 방해적인 행위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교들은 또한 법안 심의 과정에서 스코틀랜드 경찰이 기존 법 체계로도 낙태 시설 주변의 공공질서 문제를 처리하는 데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출했으며, 새로운 범죄 조항이 필요하지 않다고 밝힌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기존 법으로 충분한 상황에서 새로운 형사 처벌을 도입하는 것은 “비례성을 잃은 비민주적 국가 권력의 확대”라고 비판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 법의 적용 범위가 공공 시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식 지침에 따르면 ‘소리 내어 기도하는 행위’나 ‘침묵 시위’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완충지대 내 주거 공간에도 법이 적용된다.

법안을 발의한 스코틀랜드 녹색당 소속 질리언 맥케이 의원은 BBC 스코틀랜드와의 인터뷰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도 행위도 “누가 그 창문 앞을 지나가느냐에 따라”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주교들은 주관적인 인식에 기반한 법적 기준은 명확한 행위 기준이 아니라며, 이는 기본적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들 역시 입법 과정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제리 코리건 경감은 의회에서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를 단속하는 것은 경찰이 피하고 싶은 영역”이라며, 개인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묻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라고 증언했다.

도허티의 체포 장면은 온라인에 영상이 확산되며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미국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유럽 내 표현의 자유 제한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해 2월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스코틀랜드의 완충지대 법을 언급하며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ADF 인터내셔널은 검찰이 초기 보석 조건으로 도허티의 글래스고 광범위 지역 출입을 금지했던 조치를 “과도하다”며, 이후 해당 조건이 철회됐다고 밝혔다.

가톨릭교회의 의회 담당관은 이번 법으로 인해 위기 임신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낙태 외의 대안을 제시하는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을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며, 이 법이 선택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제한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교들은 성명에서 “태아를 위한 우리의 목소리와 기도가 범죄가 될 수는 없다”며 “모든 인간 생명은 시작부터 무한한 존엄을 지닌다. 그 진리는 개인의 사적인 생각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가진 사회는 반대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침묵 기도를 범죄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교들은 또한 법 적용 범위를 제한하기 위한 성직자 예외 조항이나 합리성에 근거한 면책 조항이 의회 과정에서 모두 부결된 점도 지적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도 유사한 완충지대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번 스코틀랜드 사례는 이러한 법률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고 해석되는지에 대한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도허티의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주교들은 이번 사건이 ‘인지된 영향’에 근거해 행위를 범죄화하는 법과 스코틀랜드의 양심·표현·종교의 자유가 과연 공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교들은 성명을 끝으로 “국가는 이제 국경 안에서 태아를 옹호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마저 억제하게 됐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