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권위’가 만든 오판의 역사… 의학 통념을 다시 묻는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땅콩 알레르기와 콜레스테롤 논쟁으로 본 의료 지침의 한계
도서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단 한 명의 주장으로 ‘계란은 콜레스테롤 위험 식품’이라는 인식이 굳어졌고, 세 살 이전에는 아이에게 땅콩을 먹이지 말라는 미국소아과학회의 권고는 미국을 세계에서 땅콩 알레르기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만들었다. 의료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돼 온 이러한 지침들이 충분한 과학적 검증을 거쳤는지를 묻는 데서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웅진지식하우스)은 출발했다.

이 책은 ‘전문가’라는 권위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절대적 기준으로 고착시켜 온 의료계의 관행을 짚었다. 저자는 의료 현장에서 통념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을 살펴보며, 그 배경에 존재했던 구조적 문제와 판단 오류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환자와 의료계 모두가 무엇을 근거로 선택해야 하는지를 다시 질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유아에게 땅콩 섭취를 피하라는 오래된 권고안이 제시됐다. 이 지침은 충분한 검증 없이 영국에서 시행된 권고를 바탕으로 확산됐고, 많은 부모들은 의료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이유로 이를 따랐다. 그러나 그 결과 땅콩 알레르기 유병률은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 면역학계에서는 조기 노출의 이점을 시사하는 연구가 있었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권고안을 만든 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 분야 간 단절과 기존 가설을 고수하려는 관성이 국가적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콜레스테롤 역시 잘못된 통념의 대표적 사례로 다뤄졌다. 마카리는 식이 콜레스테롤과 심장질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과학 연구를 통해 식사를 통해 섭취한 콜레스테롤은 체내에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마카리 박사는 이 책이 의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의료의 회복은 개인의 권위가 아니라 과학적 절차에 대한 신뢰 회복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증거에 열린 태도, 기존 믿음을 수정하려는 용기, 그리고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현대 의료를 지탱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우생학의 역사도 함께 조명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바람직한’ 인간형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강제 불임 정책이 시행됐고, 수많은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 피해를 입었다. 저자는 이를 의학의 가부장적 문화가 낳은 부끄러운 역사로 짚었다.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은 과거의 오류를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가 더 투명한 근거 위에서 작동하도록 요구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과학적 검증 과정을 확인하려는 자세가 의료와 환자 모두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반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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