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조 프로스트의 기고글인 ‘우리는 예수님의 방식으로 원수들과 맞서야 한다’(We must engage enemies Jesus' way)를 최근 게재했다.
조 프로스트는 영국 복음주의 연합의 커뮤니케이션 및 참여 담당 이사로, 커뮤니케이션, 멤버십 및 미션 팀을 이끌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올해에는 ‘적’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다. 특히 국가 대 국가의 대립, 정치적 적대 관계, 정당과 정치인, 나아가 공동체 간의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그러하다.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스펙트럼의 어느 편에 서 있든, 우리는 늘 함께하는 이들이 있고, 반대로 맞서야 할 이들이 있다는 인식을 강요받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가 우리의 적인지 규정하고, 그들에 맞서 일어서라는 요구를 받는다. 적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 싸워야 한다는 말, 방어해야 하고 결국은 적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위협을 느끼거나 위험에 처했다고 여길 때 나타나는 매우 인간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필자는 이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들이 우리의 관계와 사회를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순간들을 맞이할 때마다 익숙한 방식의 반응을 반복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멈추어 서서 조용히 성경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주변의 목소리나 개인적인 관점, 혹은 당장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다시 방향을 맞추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는 대림절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 시기는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그분의 오심과 관련된 핵심적인 성경 본문들을 깊이 묵상하는 때이다. 이사야 9장 6절에서 우리는 메시아의 이름들을 읽는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될 때, 그것은 대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사야 9장 6절은 예수께서 그렇게 불릴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림절과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구절이 있다. 이사야 64장 1절부터 9절은 메시아의 오심의 성격을 말하며, 특히 2절에서 이사야는 예수께서 “주의 이름을 주의 원수들에게 알리기 위해 내려오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시 말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예수님의 본성이 바로 그분의 원수들이 예수를 만나게 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자신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본질이 화해와 회복, 그리고 평화로 향해 있음을 알리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수들에게조차 그분이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신다. 원수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약속하신다. 원수들에게 우정과 소망의 손을 내미신다.
그렇다면 이번 대림절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과 그분의 본성과 성품을 우리의 원수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깊은 의견 차이로 갈라진 이들이 복음의 화해의 메시지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필자가 염려하거나 걱정하고 있는 사건, 연설, 정치 지도자, 혹은 공동체의 상황은 무엇인가? 그 사람이나 그 상황 위에 평화와 화해, 심지어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위해 기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 화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그 관계 속에서 평강의 왕이 드러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대림절에 필자는 세상이 적을 대하는 방식으로 적을 대하고 싶지 않다. 두려움이나 미움 속에 머물고 싶지도 않다. 대신, 평화 가운데 오셨고 장차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메시아, 분열된 세상에 우정과 화해를 제안하시는 그분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대림절에, 필자는 나의 원수들 또한 예수의 이름 위에 놓인 소망과 약속, 그리고 자유를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