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기독교인 중심의 위생 노동자 보호 위해 첫 헌법 청원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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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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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수작업 하수도 청소로 반복되는 사망 사고… NCHR 구조적 차별 중단과 국가 책임 촉구하며 역사적 법적 대응 나서
파키스탄의 위생 청소부의 모습. 이들은 보호 장비 없이 업무를 수행하며, 법적 노동 보호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 집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위생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중대한 법적 조치가 추진됐다고 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파키스탄 국가인권위원회(NCHR)는 최근 신설된 연방법원(FCC)에 헌법 청원을 제출하며, 수십 년간 수많은 사망 사고를 초래해 온 ‘수작업 하수도 청소’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청원은 특히 기독교인과 힌두교인 등 소수 종교·저계층 집단이 대다수를 이루는 위생 노동자들이 직면한 구조적 차별과 위험한 작업 환경을 국가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를 법적으로 제기한 절차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11월 21일, FCC 아민우딘 칸 대법원장을 포함한 3인 재판부는 첫 심리를 진행했다. NCHR 측은 위생 노동자들이 보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하수도에 투입되는 현실을 설명하며, 이는 생명권·존엄성·평등권·안전한 노동 환경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NCHR은 "파키스탄 내 위생 노동은 여전히 가장 위험한 직종 가운데 하나이며, 반복되는 질식사와 감전사, 독성 가스 노출은 모두 예방 가능했던 죽음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NCHR이 최근 발표한 ‘파키스탄 위생 노동의 위험성’ 조사보고서에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사망·부상 사례가 다수 기록돼 있다.

시민단체 ‘스위퍼스 아 슈퍼히어로즈’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파키스탄 19개 지역에서 최소 84명의 하수도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심리 하루 전날에도 신드주에서 한 노동자가 배수구 작업 중 질식해 사망한 사실이 법정에서 보고됐다.

NCHR의 법률대리인 이크발 나사르 변호사는 “이 비인간적 노동 관행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며 즉각적인 정부 개입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물·하수도 공사, 폐기물 관리 기관, 각 주 정부 등에 공식 통지를 보내 답변을 요구했다.

NCHR 라비야 자베리 아가 위원장은 심리 직후 “맨손으로 하수도를 청소하게 하는 것은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다. 애초에 사람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공간”이라며, 위생 노동의 전면적 기계화와 안전 장비 도입, 강력한 산업안전 규정 집행을 촉구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위생 노동이 ‘천민 직업’으로 낙인찍혀 있으며, 주로 기독교·힌두교 등 소수 종교 공동체가 떠맡아 왔다. 2021년 법·정의센터(CLJ)는 보고서 ‘수치와 낙인’에서 이 직종이 식민지 시대 카스트 구조의 잔재로 이어지고 있으며, 현대에도 소수자 집단을 특정 직업군에 묶어 두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7월 국제앰네스티는 ‘우리를 갈라보면 그들도 피가 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위생 노동자들이 공공부문에서도 조직적 차별과 위험한 노동 환경, 종교·카스트 기반 배제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위생직 채용 공고 약 300건 가운데 상당수가 노골적으로 ‘비무슬림 지원자’ 또는 ‘하층 카스트’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앰네스티는 정부 기관 다섯 곳을 조사한 결과, 기독교인들이 가장 낮은 등급의 위생 노동직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으며, 정규직 전환이 거부된 채 계약직·일용직 형태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회보장 혜택과 안정적 급여, 법적 보호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 위생 노동자의 상황은 더욱 취약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카스트·종교·성별이 겹친 ‘삼중 차별’ 속에서 일하며, 절반가량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낙인은 노동자들의 생명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앰네스티는 신성모독 혐의로 기독교인 위생 노동자들이 표적이 된 사례를 포함해 여러 폭력 사건을 기록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아시아 비비 사건이 보고서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위생 노동자들이 극도로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고 있지만, 보호장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안전 교육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월급이 생계비조차 충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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