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학회가 8일 오전 서울신학대학교(총장 황덕형)에서 ‘AI와 기술시대의 영성’을 주제로 제54회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학회에는 14개 회원학회 소속 약 350명의 신학자들이 모여 논문발표와 개별 모임을 가졌다.
주제발표에는 △윤철호 박사(장신대)가 ‘인공지능과 인간 의식 - 과학철학적 논의와 신학적 성찰’ △박욱주 박사(연세대)가 ‘마인드 업로딩의 인간학, 도덕정 창의성의 영혼론: 트랜스휴먼 신학 갱신을 위한 제언’ △이윤경 박사(이화여대)가 ‘포스트휴먼 신화: 에덴, 기술, 그리고 종말’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AI, 인간 대체가 아닌 인간성의 재발견에 있어”
윤철호 박사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이 인간과 동일한 의미의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현대 과학철학, 신경과학, 그리고 신학을 관통하는 근본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며 “최근 AI의 발전은 단순한 계산 능력을 넘어 언어 이해, 창의적 산출, 문제 해결 등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졌던 영역에까지 도전하고 있으며, 이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고 했다.
이어 “윤 박사는 오늘날 과학철학적 논의는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인간 의식은 수십억 년에 걸친 자연 과정과 신경계의 발전을 통해 체화된 마음의 형태로 나타난다”며 “이와 반대로, AI는 인간이 설계한 알고리즘을 통해 극히 짧은 시간 안에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적 산물에 불과하다. AI는 데이터 처리와 문제 해결 능력을 보유하지만, 인간과 같은 체험적, 감각적 경험은 결코 가지지 못한다”고 했다.
또 “둘째로 인간 의식은 그 자체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체험을 동반하며, 이는 생명체의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AI는 단지 시뮬레이션된 응답을 바탕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며 “셋째로 인간 의식은 사회적 관계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 반면, AI는 그 자체의 내적 필요에 의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설정한 규칙과 데이터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적 존재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AI와 인간 의식이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AI가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라며 “AI는 고도의 계산 능력과 패턴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수준은 결코 인간의 체험적 의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학적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믿어왔다. 만약 AI가 인간과 동일한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전통적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독특한 위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며 “AI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마음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수준의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을 품은 성경 속 바벨탑 사건이나 선악과의 유혹과 유사하다”고 했다.
더불어 “인간이 만들어낸 AI의 의식은 결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그 수준은 반려동물 수준의 유사 의식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윤 박사는 “결론적으로 AI와 인간 의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AI가 인간과 동등한 의식을 가질 수 없다”며 “AI가 인간 의식을 대체하거나 그와 동일시되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신학적·도덕적·영적 능력을 재조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AI를 유능한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AI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본질을 재발견하는 데 있다”며 “AI와의 만남은 인간 의식의 기원과 그 내면적, 관계적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만들며, 이 물음에 대해 과학·철학·신학이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적 협력으로 응답할 때, 우리는 과학기술 시대 속에서도 참된 인간성과 공동체의 선을 보존·증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포스트휴먼 시대의 신학, 영혼 및 인간성 개념 정립 위한 노력 필요
박욱주 박사는 “딥러닝 기술의 혁신적 발전을 계기삼아 대중의 미래상을 뒤바꾼 트랜스휴머니즘의 환상적인 예언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인간의 자연적 육체를 버리고 기계 육체로 환원된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인간상을 그리도록 유도했고 포스트휴먼 신학 역시 다분히 그러한 인간상에 초점을 맞추고 신학적 인간학의 갱신 혹은 혁신을 시도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의 전제인 궁극의 트랜스휴먼 기술들이 현재로서 그 기술적 현실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현재까지 트랜스휴먼 신학의 인간학적 제안들이 신학적 인간학의 영혼이해를 급진적으로 해체하는 측면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며 “인공지능 기술의 혁신적이고 점진적인 발전을 앞둔 포스트휴먼 시대의 신학은 실현 가능성부터 불투명한 트랜스휴머니즘 지지자들의 예언에 현혹되기보다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즉각적으로 우리 실존에 적용될 수 있는 영혼 및 인간성 개념 정립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대비하는 연구자들에게 더욱 냉철하고 다각적인 접근을 요구된다”며 “연구자들이 현재보다 훨씬 더 높은 기술적 이해도를 갖추고,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적인 속성인 영혼에 대한 신학적 고찰이 부족하다면, 기술 발전에 따른 육체적 변화라는 민감한 논제를 다룰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영혼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인간성의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 변화나 유물론적 해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신학적 인간학의 전통적인 유산과 사유를 통해, 도덕적 창의성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며 “또한 이러한 신학적 성찰이 뒷받침될 때만이 인공지능과 트랜스휴먼 기술의 미래를 효과적으로 전망하고 그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영혼을 이해하는 신학적 인간학의 전통은 단순히 도덕적 창의성에 그치지 않는다”며 “포스트휴먼 신학의 성숙을 위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연구가 기술적 발전에 대한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심도 깊게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 유한성 인정하는 삶, 인간 존재의 의미 회복하는 길
이윤경 박사는 “불교와 기독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 구원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며 “불교는 윤회의 굴레를 끊고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으며, 기독교는 구속과 부활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는 길을 제시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 구원 개념이 점차 테크놀로지로 대체되고 있다”며 “특히 디지털 불멸을 추구하는 신흥 종교들이, 죽음을 거부하며 육체적 불멸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 박사는 “죽음을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현실로 전제하는 전통적 종교들이,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데 반해, 현대 사회는 죽음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죽음을 거부하는 디지털 불멸을 추구하는 세대에 대해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지만, 결국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이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전이 신의 존재를 초월하고 디지털 불멸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며 “인류가 트랜스휴먼과 포스트휴먼의 시대로 진입하려는 흐름 속에서, 디지털 불멸을 실현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현대판 신화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한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오늘날의 테크노-유토피아 프로젝트와 비교해 볼 때, 인간 존재의 의미와 유한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촉구된다”며 “기술 발전이 인간성을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죽음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생을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놓치게 되는 위험을 내포한다”고 했다.
그는 모 가댓(Mo Gawdat)의 말을 인용해 “기술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성을 희생하고 있다”며 “인간은 본래 유한하고 유병한 존재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며, 유한성과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울러 “테크노-유토피아의 꿈을 추진하기에 앞서, 우리가 정말로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며 “기술적 진보가 우리에게 영생을 제공한다고 믿는 것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요구되며, 죽음을 인정하고 유한한 존재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했다.
한편, 행사는 주제 전체토론과 각 신학회별 모임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가 이어졌고, 폐회예배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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