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우리 인생이 이 땅에 던져진 존재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생에 주어진 절대적인 의미는 없으며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의 주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한 번 뿐인 인생을 나의 선택이 아닌 어떤 외적 존재의 힘에 의해 주어진 채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생물학적 부모의 유전자적인 속성을 받은 채로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탄생의 조건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고, 어떤 인종이 되었으며, 어떤 외모와 지능을 갖게 되었고 어떤 형제자매의 서열 속에 놓이게 되었는가 등의 변화시킬 수 없는 많은 조건들이 태어나는 순간 주어진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주어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이 그 이후의 인생의 30-40%를 조건화시킬 수 있다고 하니 주어진 삶의 기본 조건이 우리 삶의 방향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이 조건이 객관적 기준에서 평균 이상의 조건이라면 그/그녀의 인생은 비교적 순항하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양가 좋은 음식을 제공받고,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정서적 지지를 받는 아이가 자신의 적성을 잘 개발하고 성취하며 기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맥락적 가족치료에서는 이렇게 부모로부터 받은 자산을 긍정 유산(positive legacy)이라고 부른다. 만약 아이가 좋은 부모로부터 지지와 격려의 말을 듣고 자라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내면에 하나의 긍정명령문으로 자리 잡게 되고 무의식적인 자기 확신과 자존감의 근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긍정의 힘은 인생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 건강한 한 개체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반대로 시작점 자체가 악조건 상태에서 출발했다면 그/그녀의 인생 앞에 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것 또한 예상할 수 있겠다. 게다가 만약 부모 자신이 자신의 미해결된 인생의 과제들을 자녀에게 투사하여 건강한 독립을 방해하거나 끊임없는 부정적 메시지를 통해 자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부정 유산(negative legacy)을 남기게 된다면 아이는 인생의 자산을 남기는 풍성한 삶이 아닌, 대물리는 정서적 빚을 떠안게 되고 결국에는 심리적 파산에 이르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주어진 삶의 조건과 내가 받은 유산이 자산인가 빚더미인가라는 대물림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사실 그렇게 애쓰며 노력할 가치가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은 늘 공식이 아닌 의외의 일들이 일어나는 무대이기에 주어진 상황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부모로부터 긍정 유산을 받고 자신이 열심히 그 자산을 불려 우량 신용자가 된 이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주어진 긍정 유산을 탕진하여 불량 신용자가 된 이들이 그러하다. ‘저렇게 훌륭한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녀가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일도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자산은 부정 유산이 많아 불량 신용자가 되는 일반적인 비극의 과정이 아닌, 물려받은 자산은 빈약 하지만 후에 자신의 노력과 외적인 ‘운 좋은’ 상황들을 통해 심리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우량 신용자가 된 이들이 그러하다. 사실 우리에게 삶의 의욕을 주고 일어날 힘을 얻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대개 부정 유산을 극복하고 우량 신용자가 된 이들의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성경은 이 표류하기 쉽고 불확실한 인생의 바다에서 우리 영혼의 닻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긍정 유산을 받았다고 마냥 좋아할 것도 없고, 부정 유산을 받았다고 전적으로 절망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내 자신도 불량 신용자가 될 위험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우량 신용자가 될 희망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싶은 ‘운 좋은’ 상황이라는 것도 사실은 매우 불안정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우량 신용자의 삶을 위해 인생의 바다에서 소망을 어디에 두는가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보이는 조건, 가족, 나의 상황 등을 보며 잔잔할 때는 안심하거나 심지어 오만해지고, 풍랑이 일 때는 절망하거나 심지어 자해적이 되지만, 그 모든 조건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가변적이며 불안정하고 또한 실존의 주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외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아닌 이 현상의 세계 너머의 세상을 소망하도록 이끈다. 그 소망은 풍랑 이는 바다 한가운데 요동하지 않는 닻이 되어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든든하게 자신의 삶을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살아낼 근간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하나뿐인 독생자를 아낌없이 희생제물로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나와 같은 몸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아들의 사랑, 그리고 오늘도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영의 인도하심, 이것이 우리의 소망, 든든한 영혼의 닻이 되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에만 고정 되어 있는 눈을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보자. 그리고 그 푸른 하늘, 푸른 바다 같은 이 넓은 세상에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에 나의 닻을 내리자. 다른 곳에 매여 있는 줄을 풀어 다시한번 예수그리스도에게 매고, 느슨해진 밧줄을 다시 한번 든든히 조여보자. 푸른 계절, 다시 한번 닻을 재정비하는 그런 때가 되었다.
#이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