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제목으로는 처음 책이 나왔다. 조직신학자로서 왕성하게 저술 활동을 해 온 김재성 교수(전 국제신대 부총장)가 펴낸 스물 다섯 번째 저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경에 담긴 구원의 전체 교리의 뿌리이자 총체적 구조이며,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문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풀이한다.
김 교수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 긴밀한 교제와 친교를 나눈다는 가르침은 모든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라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구원받은 성도의 정체성과 영생을 설명하는 중심적인 원리”라고 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충분하게 깨우치게 되면,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모두 다 초월했다는 사도 바울의 담대한 고백을 우리도 토로해 낼 수 있게 된다(빌 1:20-21)”고 덧붙였다.
아래는 저자인 김재성 교수가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어떻게 구원에 참여하는가를 설명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뤄서 살아간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은 신약성경에 여러차례 강조되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며,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
또한 에베소서 1장 첫 부분에,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가 아홉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모든 구원의 혜택들을 받는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다가,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죄인을 위해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야만 온전한 구원이 이뤄진다. 성령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성도가 되면, 성부 하나님과 긴밀한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서 모든 신령한 축복들을 향유한다.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가? 성경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연합되었음을 설명한다. 첫째는 믿음으로 인하여, 그리고 둘째는 성령에 의해서, 죄인이던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된다.
주님과 연합한 성도들에게는 고난도 있고, 영광도 주어진다.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는 가운데, 성도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롬 5:2-5). 사탄의 방해와 자신의 헛된 생각과 허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후회할 일들이 늘어난다. 그러나 고난 후에 영광스러운 승리가 주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에게는 역경, 유혹, 혼란, 질병, 실패, 어두움, 슬픔, 좌절 등을 이겨내는 지혜와 능력이 공급되어진다. 마침내 승천하사 보좌에 앉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존 머레이 교수가 쓴 『구속: 성취와 적용』(1955년)이 나온 후에, 구원론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었고, 재구성되었다. 그동안에는 주로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이라고 해서, 아홉 가지 구원의 혜택들을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다뤄었다. 즉, 소명 중생 믿음 회개 칭의 성화 양자됨 견인 영화 등을 좀 더 세밀하게 각각의 주제들로 나눠놓았고, 또한 서로 간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다뤘다. 예를 들면, 루터교회에서는 칭의 교리를 중심에 놓고서 믿음과의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먼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홉 가지 혜택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안토니 후크마 박사가 『개혁주의 구원론』 (1989년)에서 이러한 구조를 상세하게 제시했다. 그 후로, 거의 대부분의 구원론 주제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근간으로 하여 풀이하게 되어졌다.
2.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축복을 누리도록 빚어진 존재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인간들은 어둠과 혼돈 속에서 헤매이면서 수많은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죄값으로 인하여,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모든 날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 같다. 고단한 삶은 슬픔 뿐이요, 너무나 짧다. 사람이란 존재는 숭배를 받을 만큼 그리 대단한 것도 없으며, 덧없고, 보잘 것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것들, 현상적인 것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착한다. 분별력이 없는 인생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을 상실하고 말았다.
21세기 인류사회는 최첨단 과학기술 문명이 만개한 세상에서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엉겅퀴와 가시’로 인해서 그리 평안치 못하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평탄한 생애를 누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어있고, 결국 패망에 이르고 만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무지막지한 전쟁과 살인을 대수롭지 않게 자행하는 자들이 문명세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첨단 영상 장비들의 발전으로 지구촌의 일들을 서로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지만, 지구촌은 여전히 혼돈 속에서 빠져있다. 세계 곳곳에서 무질서와 불의가 난무하고,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기가 위태스럽다. 그저 하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마저도 버겁기 그지없다. 지역사회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난제들이 뒤엉켜 있으며, 죄악의 흔적과 피흘림의 쟁투에 매몰돼 있다. 모든 인생들의 기록들이란 그저 임시적인 것들에 대한 과장과 포장일 뿐이고, 자신들을 과대평가하는 작자들의 허망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죄악에 물든 인간 사회의 혼돈과 캄캄한 어둠을 환히 밝혀줄 수 있는 길은 하늘로부터 오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시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거룩한 삶과 순종을 달성하셨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사망으로부터 구원과 영적인 혜택들이 주어진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이 이 세상의 빛이다.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영광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신다.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때에, “흑암에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마 4:16). 필자는 날마다 “메리 크리스마스!”! 또한 날마다 재림의 주님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면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외쳐야 한다고 확신한다. “정의와 의로움의 태양”으로 오신 분만이 죄악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말 4:2).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빛이요 등불이다. 거짓을 드러내고, 가짜들이 설쳐대는 모순과 야합과 공교한 감언이설, 모든 어두움을 환히 비추는 빛이다. 그 누구도 이 빛 앞에서는 숨길 수 없다. 절대적인 독립성, 충족성, 완전성을 갖추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비춰주는 진리의 빛이 되신다. 이러한 참된 빛이 없다면, 평화와 기쁨과 위로를 얻을 수 없다. 이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주어진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3.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새 사람
연합을 통해서, 성도들은 내면에 담긴 본질적인 축복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새 사람”이라는 신분을 갖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사역의 혜택을 누리면서, 종말론적인 축복과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믿음을 가진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나라의 종말론적인 혜택들을 누리게 된다.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성령의 열매와 경건의 빛을 발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교통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독교의 교훈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 누리는 혜택들과 은혜의 축복들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인간이 가져야 할 참된 지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지 못한다. 사람이 약간의 지식이나 정보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저 일시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샘솟는 기쁨과 무한한 행복과 영원한 만족의 근원과 본질을 맛볼 수 없다.
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중요한가? 부활하사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서 중보자로 돌보아 주시는 분과의 교통과 친교가 없이는 거룩한 진리와 참된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최고의 학문이라고 숭배를 받는 철학이 과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가? 그 밖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와 영특한 천재 수재들이 만들어냈다는 각종 학문들이 과연 우리의 문제를 어디까지 해결해 주고 있는가? 겉으로는 거룩하고 장엄하게 보이는 신전들과 전당들이 내놓는 종교적인 가르침들 속에서는 시원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는가? 그저 문제를 맴돌고 있을 뿐, 그 어느 곳에도 선하고 순결한 진리와 영원한 위로를 주는 곳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이 땅 위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완전히 알려주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영원한 지식과 참된 지혜를 세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세상은 재앙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대재앙을 겪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던가! 이어서 터진 이스라엘 주변의 전쟁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토분쟁, 아프리카 국가들의 종족 패권 다툼, 남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 지배권 쟁투 등등. 로스엔젤스에서는 산불이 일어나더니 강풍에 번져서 십 만 채에 달하는 집과 건물들이 불에 탔다. 그저 뻘건 화염이 온 산과 집을 송두리째 태우는데, 그저 불구덩이를 피해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 젊은이들은 장래에 대해서 밝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실망감 (hopeless)과 슬픔(sadness)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세계 전쟁과 이권 대립, 혐오스러운 지도자들의 언행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인들의 말들은 어떤 이의 것이라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어떤 해명도 신뢰할 수 없으니, 혼란된 사태의 수습 방안이 나오질 않는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괴롭고 가슴 아픈 날들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의롭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점쟁이가 알려줄 수는 결코 없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문제들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데,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죽음으로 가도록 결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이 부정할 수 없는 인생의 운명에 대해서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어디에, 누구에게 궁극적인 답이 있는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바르게 파악하려면, 먼저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지혜는 만물의 주권적 지배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며,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분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태양보다 더 밝히 비춰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만 인생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려면, 참된 경외심과 겸손한 신앙이 필수적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왜냐면 죄가 창조된 우주 만물과 세계 가운데 펼쳐진 계시를 막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자기가 옳다는 우둔함과 어리석음에 빠져있어서, 계시를 보아도 알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리를 알 수 있는데, 참된 경건과 신앙이 있어야만 한다.
4. 연합과 성도의 총체적인 삶
이 책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교제와 연대 의식을 가져야만,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음을 제시한다. 죄인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엄청난 혜택들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부활하사 승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강조되었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서 영원한 중보자로서 우리를 돌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시기에 우리는 지금 행복한 나날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성도들을 위하여 진행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 사역을 깨우쳐야만 한다.
끝으로 성도들은 날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강조한다. 한국교회가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용어의 시정을 촉구한다. 오직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기 때문에, “돕는 기도팀”으로 바꿔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