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의 세부 과제 중 ‘낙태 약물 도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료계와 종교계,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여성단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약물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의료계와 종교계는 “국가가 살인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지난 8월 13일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세부 과제 중 하나로 ‘낙태 약물 도입’이 공식 발표되면서 시작됐다. 그 후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낙태죄에 대한 입법 공백 현실을 지적하며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언급한 것이 찬반 논란을 격화시켰다.
70여 개 단체가 참여한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 중인 ‘낙태 약물 도입’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학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는 “임신 6주 차에도 심장이 뛰고, 10주가 되면 태아의 모습이 뚜렷해지는데 이런 아기의 생명을 약물로 죽이는 건 명백한 살인”이라고 했다. 또 “낙태 약물은 여성에게도 과다 출혈, 감염, 패혈증 그리고 사망에 이르게까지 만드는 안전하지 않은 약물”이라며 “국가가 낙태 약물을 도입하는 건 많은 여성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서울병원 장지영 교수는 미국산부인과학회(ACOG)의 2023년 보고서를 인용해 “약물 낙태는 시술에 비해 합병증 위험이 높고, 임신 주수가 늘어날수록 실패율이 급격히 증가한다”며 여성의 건강권을 위해 낙태 약물 도입이 필요하다는 여성계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민연합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약물 낙태 고려 대상에 포함되는 임신 10주의 태아 모습은 얼굴도 손가락 발가락도 심장도 우리도 똑같이 구성된 이미 인간의 모습을 지닌 존재인데 이런 아기를 약물로 죽이는 것은 살인”이라며 정부에 생명을 종결하는 낙태 약물 합법화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교계와 의료계의 잇따른 우려의 목소리에도 여성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약물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을 위헌으로 판결한 후 국회 입법이 지연되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불법 경로를 통한 임신중지가 늘어나고 있고, 불법 낙태 약물 유통이 횡행하는 바람에 여성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임신중지 약물이 불법이다. ‘미프진’ 등 주로 SNS나 해외 사이트를 통해 은밀하게 유통되는 불법 낙태약을 복용한 여성 중에 심각한 합병증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법 유통이라는 특성상 피해 사례가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그렇지 실제 피해는 훨씬 크고 심각한 수준일 거란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그런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을 따지자면 우리나라를 낙태에 있어 ‘법의 사각지대’로 만든 국회 책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헌재가 낙태죄 위헌 결정과 함께 2020년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지만, 지난 6년째 국회가 입법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오늘 우리나라에 음성적인 불법 낙태가 성행하고 가짜 낙태약까지 판치는 이른바 ‘낙태 불법공화국’이란 불명예 꼬리표까지 붙게 된 게 아닌가.
그러니 이제라도 낙태약을 합법화해 피해를 줄여보겠다는 게 새 정부의 구상인 듯싶다. 불법이던 낙태약을 합법화하면 약값도 싸지고 불법 약에 의한 피해도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낙태 문제가 약을 합법화한다고 간단히 해결될 사안인가. 태아를 죽이는 생명 살상 행위에 대한 면죄부 효과로 낙태가 만연한 세상이 되는 건 누가 책임질 건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또한 논란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수술뿐 아니라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합법적 절차로 인정하고, 임신중지를 건강보험 급여 적용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약물 낙태 도입을 포함한 무제한 낙태 허용과 이를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하겠다는 건데 내 뱃속에 든 생명이니 내 맘대로 죽여도 괜찮다는 살인 면허증을 국가가 발급하고, 그 비용까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겠다는 발상이 충격적이다 못해 가학적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낙태 약물 도입’이 반영됐다는 건 정부가 이를 제도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낙태 문제를 불법 유통되는 약물에 의한 안전 문제에 국한해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불법 유통되는 약물에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안전 문제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태아의 생명권 문제인 데 이를 간과하고 있는 거다.
교계는 2024년 합계 출산율 0.75명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인구 절벽에 직면한 절박한 현실에서 국가 존립을 걱정해야 할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고 생명을 끊는 약물의 제도화를 선택하는 건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이 계획이 정책으로 확정된 게 아니고 9월 중 최종 확정과 발표가 이뤄질 것이란 설명이지만 정 장관이 국회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논의 수준이 아닌 정책적 실행을 전제로 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파장이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건강권 문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낙태약 불법 유통을 제도적으로 관리 가능한 체계를 만드는 것에 앞서 약물 남용으로 죽어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주권 정부’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