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신학의 성경관에 영향을 준 요소들 중에서 두 번째로 영향을 준 요소는 해방신학이라 할 수 있다. 해방신학은 남미의 정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상황적 필요로부터 출발한 상황신학이며 정치문제를 중심에 두는 정치신학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 신학은 어떤 행동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다시 적용하는 형태를 반복하면서 역사 속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프락시스(praxis) 라는 행동이론을 동원하여 가난과 억압 아래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상황적 문제인식에서 출발하고 해방과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목표로 하기에 해방신학은 성경에서도 주로 해방의 주제 특히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 이야기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도 죄의 문제 해결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자로 보기보다는 눌린 자를 해방하시는 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예수가 해방자로 묘사되기에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구원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포괄적인 구원 이해를 갖게 된다. 즉 해방신학은 “....구원의 개념에 정치, 경제, 사회적 해방까지 포함하려고 한다. 그것은 억압, 가난, 불의, 비인간성으로부터 해방되는 현실적인 구원이다.” 이와 같은 포괄적 구원 이해는 전통적인 구원 이해와는 사뭇 다른 구원 이해를 만들어내는데 이에 대해 이복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방신학이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려는 입장은 자연히 성경이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입장에 초점을 맞춘 성경해석과는 차이를 만들어내게 된다. 특별히 이러한 차이는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구원론과 다른 견해를 띠게 된다.”
이상과 같이 달라진 구원 개념과 더불어 해방신학은 종말관에 있어서도 다른 견해를 펼치게 된다. 즉 종말은 예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미래의 천국, 천상의 초역사적 천국이기 보다는 오늘 이 땅 위에서 실현되는 천국으로 이해된다. 인간은 막연하게 신이 이루는 천국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노력과 투쟁으로 역사 속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할 책임을 지니는 존재로 묘사된다. 예수는 바로 이런 천국을 건설한 모델, 선구자, 중개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의 뒤를 따라 이 땅위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교회의 주된 사명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김균진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인간 자신이 이기적 본능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내면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성서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의 경우 성서는 이 문제를 중심으로 해석되며 또 설교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그의 객관적 세계를 도피하여 내면성 속으로 도피할 수 있도록 성서를 해석해서도 안 되지만, 자신의 내면적 신앙의 결단 없이 단지 세계를 향하도록 해석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해방신학은 내면적 신앙의 회심 없이 세계를 향하는 성경 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성경으로부터가 아닌 상황으로부터의 성경 해석이며,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구원으로 보려는 해석이며, 영원한 구원이 아닌 이 땅위에서의 구원을 구원으로 보는 경향의 해석이다. 이러한 해방신학의 영향력은 에큐메니칼 신학에 많이 나타났는데, 예를 들면 1973년 방콕 대회는 구원을 ‘오늘의 구원’ 즉 이 땅위에서 오늘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정의하면서 “구원이란 그리스도께서 개인들을 모든 죄와 그것의 결과들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세계를 해방시키시고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들을 통하여 하시는 과업이다.” 라고 말하였다.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에큐메니칼 진영은 구원을 해방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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