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로봇은 노인을 돌보며, 유전자 편집 기술은 생명의 기원을 인간의 손으로 다루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놀라운 진보에 감탄하며 "이제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곧 또 다른 질문을 낳습니다. 우리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야’ 하는가?
기술의 발전은 축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없이도 될 수 있다’는 자만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심각한 영적 위기입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인류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도시를 세우고,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이 건설 프로젝트는 겉으로 보기엔 위대하고 창조적인 문명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벽돌을 만들어 탑을 쌓고, 협동하며 발전을 도모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기술 개발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탑을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기술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구가 아닌, 인간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늘에 닿는 탑’을 만들며 자신의 위치를 대신하려는 교만을 보시고 그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기술 그 자체보다도, 그 기술을 추구하는 인간의 태도와 동기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은 다양한 디지털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AI는 이제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고, 가상현실은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세상을 제공하며, 유전자 편집은 생명조차 인간의 설계대로 통제하려 합니다.
이러한 기술의 방향성은 결국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꼭 필요한 분인가?”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죽음도 언젠가는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과학 기술은 하나님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 스스로의 왕국을 세우는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바벨탑의 반복입니다. 하나님 없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이 신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보다 과학을 신뢰합니다. 문제 앞에서 기도하기보다 검색합니다. 병이 나면 치유의 하나님보다 의료기술을 먼저 찾습니다. 마음의 공허함은 예배보다 영상과 게임으로 달래려 합니다.
과학은 어느새 우리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경고하는 ‘우상화’의 작동 방식입니다. 우상은 우리를 멀리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유익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어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결국 하나님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가동합니다.
성경은 과학기술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었고(창 6:14), 성막은 정교한 기술로 지어졌으며(출 31장), 솔로몬 성전도 최고의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건축되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 목적과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의 여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외함과 절제: 하나님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넘어집니다. 기술 앞에서도 “주의 뜻이면”이라는 신앙의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감사와 청지기 정신: 과학 기술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창 1:28)의 연장입니다. 잘 사용하면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확장하는 도구가 됩니다.
분별과 복음 중심: 어떤 기술이든 그것이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인간 중심의 자율성을 절대화한다면, 우리는 멈추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한 기술 사용: 바울이 로마 도로를 통해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디지털 플랫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로 삼아야 합니다.
기술은 바벨탑이 될 수도 있고, 성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중심에 누가 계시느냐에 따라 기술은 반역이 되기도 하고, 예배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한 손에 복음을, 한 손에 기술을 들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제가 가진 기술과 능력이 주님 없이 높아지려는 바벨탑이 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성막이 되게 하소서.”
#송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