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 제도가 시행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건강보험 급여비는 37배 이상 폭증한 반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보장 수준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의 지불 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현행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한 평가 및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며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이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주최한 것으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 지속 가능성을 진단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90년 대비 2023년까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62만 원에서 4657만8000원으로 약 10.1배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1인당 건강보험 급여비는 4만4000원에서 164만7000원으로 무려 37.4배나 급등했다. 그러나 건강보험료율은 3.13%에서 7.09%로 2.3배 증가하는 데 그쳤고, 보장률은 62.5%에서 64.9%로 불과 2.4%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결국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는 크게 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국제 비교에서도 확인된다. 김 교수는 한국의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중에서도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17.2회로 OECD 평균인 6.8회의 2.5배에 달하며, 입원 일수도 18.0일로 OECD 평균(8.0일)의 2.3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공적 의료비 보장 비율은 여전히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공공 보장률은 61%에 불과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인 73%보다 12%포인트 낮은 수치다. 많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민간 공급자 중심의 보건의료 체계와 행위별 수가제를 기반으로 한 건강보험 지불 구조를 꼽았다. 현재의 구조는 진료 횟수와 시술 건수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의료 남용 가능성을 높이고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를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행위별 수가제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뿐 아니라, 환자 중심의 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며 "의료비 증가, 고령화 진전,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건강보험 기능을 고려할 때, 현재의 지불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 보험료 부담 능력과 국가의 재정 여건, 보장성 확대라는 정책 목표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한국형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구조적 대안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