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일보는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가 최근 서울 서현교회 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제316회 월례세미나에서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연재합니다.
4. 우남의 기독교 개종의 특징
우남의 옥중 개종을 볼 때 첫 번째 특징은 그의 개종은 상당 기간에 걸친 점진적(progressive) 개종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한 급격한(radical) 개종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이런 급격한 개종의 경우에는 과거에 자신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급격하게 긍정적으로 바뀌고, 과거의 자신을 자서전적으로 부정하고(autobiographical denial of the past)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도 바울의 개종에서도 나타나는 이런 변화는(빌립보서 3:7-8) 우남에게서도 발견된다. “1천 9백여년 전에 죽었다는 사람이 나의 영혼을 구한다는” “그런 바보 같은 교리를” 우남도 믿게 되었다. 미국 유학 중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기독교대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 그들의 마음과 힘은 갱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자나 부처님은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만인 한국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만이 참다운 구원 주실 수 있고 또 주실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유학자요 선비였던 그는 이제 기독교 복음 안에서 자신 구원과 미래에 세워질 독립국가의 구원이 있다고 본다. 매우 급격한 사상적 전환이 일어났다.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지사(志士)적 삶을 살다가 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점이다. 지사(志士)적 삶을 살다가 옥에 갇히면 보통 스스로를 더욱 더 의인(義人)으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지사적 인물이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뒤 스스로를 죄인(罪人)으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능력의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a limited human being)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또한 우남은 한 명의 국민으로서 자신도 잘못이 많음을 인정한다. 『독립정신』에서 그는 “이 나라 2천만 백성의 한 사람인 필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만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잘못이 많음을 알고,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우남은 아마도 십자가 위의 예수의 고난과 자신의 고난을 일치시켰던 것 같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저버린 데 있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 일부 죄수들은 죽음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자들은 교수대로 끌려갔고, 또 다른 이들은 마치 사탄 자신이 영원히 옥좌에서 군림하고 있는 듯 희망의 빛줄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끝없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놓는 예수 모습과 자신의 고난을 일치시킴으로 그는 예수의 메시지와 기독교의 가르침에 보다 더 쉽게 마음을 열게 되었을 것이다. 손세일은 우남이 “성서 속의 예수의 형상에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준거를 찾았다.”고 말하는데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우남의 개종의 세 번째 특징은 정치적 개종이 종교적 개종에 선행(先行)했다는 점이다. 우남의 만민공동회와 신문사 활동을 통해 나타나듯이 그는 이미 전제군주제에 맞서 싸웠고 그의 정치적 입장은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유지하면서도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주의로 바뀌어 있었다. 배재학당에서 공부한 2년을 포함해 그가 수감되기 전까지의 기간에 그의 정치적 개종은 이미 끝나 있었다. 우남의 종교적 개종은 자신이 이미 수행한 정치적 개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위의 인용한 글에 이어서 우남은 또 이런 말을 한다.
“… 우리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너무나 이기적이고 이기주의적이어서 동포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전연 무관심했던 우리 겨레의 심정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우남은 기독교가 잠재적으로 “우리 겨레의 심정”에 갖고 올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기독교가 단순히 서구 문화의 한 부분이며, 필연적으로 기독교에 의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보는 정적인(static) 관점이 아니라, 기독교 복음 안에 있는 어떤 요소가 우리의 정신을 변화시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역동적인(dynamic)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했다. 우남은 기독교 개종을 통해 서구 문명이 종교개혁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기독교 전통을 정치 사회 문화 속에 융합해내었는지를 ‘기독교 내부로부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남은 그의 정치적 목표를 단순히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이 아니라, 기독교에 기초한 독립국가로 재설정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목적(purpose)을 달성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방법은 단순한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한 차원 높은 방법이다. 그것은 곧 정신의 혁명이었다. (계속)
김철홍(장신대 교수,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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