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톰 라이트(N. T. Wright)의 예수 대속 개념의 애매성
현대신학자들은 예수의 대속 죽음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이해를 표명하고 있다. 바르트, 몰트만, 틸리히의 대속 죽음 개념도 객관적 대리 행위를 말하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개인적인 신자 하나 하나의 죄의 속죄에 대하여 표명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복음주의자 라이트의 대속 개념도 마찬가지로 애매모호하다. “죄의 용서”란 라이트에 의하면 개별 신자가 지은 죄와 허물에 대한 용서가 아니다: “죄 용서란 포로기로부터 돌아옴을 다른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Forgiveness of sins is another way of saying ‘return of exile’).(N. T. Wright,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London: SPCK and Minneapolis, Ninnesota: Fortress Press, 1996, 268.)
라이트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기에서 돌아옴은 죄 용서의 구현(the embodiment of their forgiveness)”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는 도식적으로 죄 용서라는 말에 대하여 “포로기 상태를 그치게 하는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라이트는 기독교 전통의 해석, 고난의 종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대속과 용서를 얻는다는 이사야 53장에 대한 주해 부분에서도 “이사야 40장-55장 전체에 걸쳐서 이 ‘죄 용서’는 아주 분명하게 포로기로부터 돌아온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라이트가 구약적 전통에서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이사야 53장의 예언을 세상의 구속을 위한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아 예언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은 구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니다. 라이트에 있어서 죄 용서란 “종말론적 죄 용서” 내지 종말론적 축복“의 집단적인 의미로서 바르트와 몰트만, 틸리히 등 현대신학의 영향을 받아 개별적인 죄 사함의 개념이 부재하고 그냥 시대적으로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용서 사건에 힘입는다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라이트의 죄 용서 해석은 전통적 기독교 속죄론에 대한 그의 반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위한 대속의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그 안에서 하나님 백성이 갱신되고, 세상의 빛이 되리라는 자신들의 소명을 다시 발견하게 되고, 계속되는 노예됨과 포로됨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N. T. Wright, The Challenge of Jesus: Rediscovering Who Jesus Was and Is (Downers Grover, Ill.: IVP Academics, 1999. 88, 166. ). 그리하여 라이트의 죄 용서 개념에 있어서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이 인간의 죄와 관련하여 어떻게 속죄를 이루는 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는 전통적인 속죄론에 대하여 “우리가 만든 우상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그의 아름다운 복음주의 신학에 큰 흠을 남기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라이트의 대속 개념은 그가 칭의(稱義, justification) 개념을 종말론적 유보로 해석하면서 전통적 칭의론에 대한 거부와도 연결된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개혁적인 죄의 전가(imputation of sin)를 부정하고 칭의를 언약적 율법에 대한 신실한 행위에 대한 선언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종교개혁적 정통교회의 칭의 개념을 왜곡하고 있다.(김영한, “종교개혁적 칭의론에 대한 역동적 이해,” 제32차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회 정기 논문발표회 자료집, 2016년 11월 5일 고신대 손양원홀, 9-32.). 종교개혁신앙에 의하면 칭의는 마지막 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믿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마지막날 심판은 처음 믿은 날의 칭의에 대한 확인이요 심화다.
종교개혁신학에 있어서 칭의는 언약 백성에 대한 선언으로서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에 대한 현재의 예기이다. 하지만 라이트에 의하면 현재의 칭의는 언약의 구성원인 신자들에 대한 선언이며, 미래 칭의는 이러한 언약에 충실함에 거하는 행위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라이트의 칭의 개념은 종교개혁적 칭의론의 일회적인 사건과 그리스도의(義) 전가(轉嫁) 사건(Martin Luther, “Lectures on Romans,” in Luther’s Works, ed. Hilton C. Oswald (Sint Luis: Concordia, 1972), 25, 188; John Calvin, Institutes, III.11.2/)에 위배된다. 칭의는 일회적이나 성화는 지속적이다. 라이트는 바울신학의 새 관점 학자들에서처럼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고 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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