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 1호 박사로 알려진 이애란 박사가 북한 음식에 담긴 생존의 기억과 인권 현실을 담아낸 영문 신간 『ONE MEAL, ONE MEMORY - The Taste of Survival in North Korean Cuisine』을 출간했다. 그는 최근 서울외신기자클럽 주관 행사에서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삶의 단면을 국제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취지를 밝혔다.
이 박사는 “이 책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며,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28년을 살아보니, 오히려 지금 더 북한 주민의 현실이 실감된다”고 밝혔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10세 때 가족과 함께 ‘월남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양강도 삼수군 관동리로 강제 추방됐다. 당시를 떠올리며 “새학기 첫날 저녁, 집 안은 장어튀김 냄새로 가득했던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치면서 밥상은 눈물로 뒤덮였다”고 회상했다. 이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제 이주된 산골 혁명화 구역에서의 삶은 극한의 생존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석유에 절인 밀가루 죽으로 허기를 달래고, 약초를 캐며 강제 노동에 내몰렸으며, 소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처형이 벌어지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를 지탱하게 한 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대장염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순간, 그를 살린 것은 외할머니가 해준 수수범벅이었다. 그는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기억이었고, 그것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한 끼 식사에 담긴 생존의 본질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삶의 흔적들이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또,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귀환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의 짧은 만남을 언급하며, “그의 평양 방문을 더 강하게 말리지 못한 죄책감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웜비어는 2015년 12월 북한을 여행하던 중 체포돼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2017년 6월 혼수상태로 미국에 송환된 후 엿새 만에 사망했다.
이 박사는 이 책이 단지 개인적인 회고록을 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가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