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관세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 광물의 수출 통제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베이징의 산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월부터 기존 수출 규제 대상이던 700여 품목 외에도 관련 부품, 화합물, 기술 제품 등을 포함해 총 2000개가 넘는 품목에 대해 수출 허가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 같은 조치를 통해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시행했던 희토류 수출 제한 이후 15년 만에 전략 광물 수출 통제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축하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광물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한국 전자제품과 중전기 제조사들이 이미 원료 수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전략은 중앙 통제 강화와 통제 품목의 전면 확대다. 생산부터 가공까지 전략 광물의 모든 단계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고, 2023년에는 민·군 이중 용도 물자의 수출 통제권을 상무부로 일원화했다. 이는 전략 자원의 수출을 더욱 일관성 있게 통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원료로 꼽히는 중(重)희토류 7종에 대해 지난 4월부터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사마륨, 가돌리늄, 터븀, 디스프로슘, 이트륨 등은 방위 산업과 고성능 전자장비에 필수적이며, 중국이 전 세계 생산과 정제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자원이다.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17종의 희귀 금속으로, 열과 전기가 잘 통하는 특성 덕분에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전투기, 스마트폰 등 첨단 산업에서 널리 쓰인다. 그러나 발견부터 생산까지 평균 15년 이상이 걸리며, 대체가 어려워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40년까지 희토류 수요가 현재의 7배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의 수출 통제 강화는 이미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이징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반도체 칩이나 희토류 성분이 일부라도 포함된 제품은 공식 규제 대상이 아니더라도 중국 세관에서 통관 지연을 겪고 있으며, 상무부로부터 수출 적합성 확인서를 요구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티타늄 로드, 지르코늄 튜브와 같은 일반 금속 제품까지 통관이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미국의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산업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분석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70%, 정제 및 가공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최근 3년간 미국이 수입한 희토류의 70%가 중국산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통제 강화는 불법 채굴과 밀수를 차단하고, 자원 보호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중국은 과거 일본과의 분쟁 당시 수출 제한이 밀수로 무력화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희토류 기업들을 대규모로 합병하고 중앙 통제를 강화해 왔다. 현재는 중국희토와 북방희토 두 기업이 생산 쿼터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수출 기업의 거래 내역, 고객 정보, 거래량 등을 의무 보고하게 하는 추적 시스템도 도입했다.
중국은 상무부가 관리하는 수출 통제 리스트 외에도 파생 제품까지 규제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항공용 전기모터에 쓰이는 사마륨 관련 품목만 해도 HS 코드 기준으로 200개가 넘으며, 이들 각각의 수출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해야만 통관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미국 포드는 지난 5월 희토류 자석 공급 차질로 일부 공장의 생산을 일시 중단했고,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전투기 생산도 지연됐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반이 혼란에 빠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희토류 수출 금지를 6개월간 일시 해제하는 데 합의했다.
중국은 자국 광물을 통제하면서도 니켈, 리튬, 코발트, 구리 등 주요 전략 광물의 비축을 강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중국은 국가 비축용으로 니켈 10만 톤을 구매했으며, 이는 예년보다 두 배 가까운 규모다. 조사기관 벤치마크는 앞으로 1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생산될 리튬의 90%가 중국 자본이 소유하거나 지분을 보유한 광산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완전히 차단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한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과의 무역 마찰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광물 수요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반도체와 전기차 핵심 원료인 흑연(중국 의존도 97%), 리튬(84%), 저마늄(74%) 등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광물 통제 강화는 한국 산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밥 데이비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베이징 지국장은 "중국이 전략 광물 수출을 무기화할수록 세계 각국이 희토류 채굴과 생산 역량을 키우게 될 것"이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 자신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