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눈으로만 감상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후각이라는 감각을 더한 새로운 예술 감상이 주목받고 있다. 조향사이자 미술 해설가인 노인호는 『명화와 향수』(아멜리에북스)를 통해 향기와 명화를 결합한 감각적 해석을 제안하며, 예술이 어떻게 다층적인 감정과 기억에 닿을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책의 서문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앞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물에서 향기를 느꼈고, 그 순간 그림이 냄새로 다가오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본래 무향인 물이지만, 각자의 기억 속에는 여름 바다의 짠내, 장마철의 습기,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 등으로 '물의 냄새'가 존재한다. 이 경험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향기 투어’로 이어졌고, 관람객들은 수련향과 아쿠아향을 시향하며 회화의 정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불가리의 '아쿠아', 다비도프의 '쿨 워터', 아르마니의 '아쿠아 디 지오' 같은 향수는 모네의 『수련』과 직관적으로 연결되며, 그림 속 풍경과 감정을 후각으로 환기시키는 도구로 기능한다. 향기는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서, 감정을 직접 자극하고 더 깊은 기억의 층위로 인도하는 열쇠가 된다.
책의 또 다른 인상적인 사례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소나무 향의 연결이다. 비 갠 뒤 안개가 걷히는 산자락, 그 촉촉한 공기 속에 번지는 진한 솔 향을 노인호는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알바 디 서울’ 향수로 떠올린다. 실제로 이 향수는 소나무 추출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정선의 화폭 속 새벽 숲의 냄새를 후각으로 불러오는 감각적 연결을 가능케 한다.
『명화와 향수』는 단순한 향수 추천서나 미술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은 감각의 교차점에서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기억과 감정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그림이 감정의 문을 여는 열쇠라면, 향수는 그 감정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하는 암호다. 후각은 시각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그 기억은 다시 예술로 돌아온다.
노인호의 이 책은 향기와 그림을 함께 체험하는 새로운 예술 감상의 제안이자, 미술을 감각적으로 확장하는 창의적인 시도다. 눈으로 보고, 코로 느끼며, 마음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감상의 문이 이 책을 통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