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인권 개선 노력 ‘올스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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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 1년 만에 멈췄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9·19 군사 합의를 복원하고 대북 전단 살포 및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수차례 밝힌 데 이어 지난 11일 군에 확성기 방송 중지를 직접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무더기 발사, GPS 교란 공격 등 대남 도발에 대응하는 카드였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로 갖가지 피해가 발생하자 맞대응 차원에서 6년만인 지난해 6월 9일 재개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모든 전선에서 가동되던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조치는 남북 관계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걸 실천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은 북한과 사전 협의가 없이 이 대통령의 독자적인 결단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우리 군의 선제적 중단 조치 이후에도 서부전선 일부 지역에서 대남 소음 방송을 계속하다 지금은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도록 지시한 것에 대해 야당인 국민의 힘과 탈북민 단체 등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대북 유화 정책의 하나라 하더라도 도발하지 않겠다는 북측의 약속도 없이 알아서 확성기부터 끈 건 안보와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란 반응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박정희 정부 때인 지난 1963년,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첫 실시 됐다. 이후 수십 년간 재개와 중단이 반복됐다. 지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로 중단됐다가 1980년대 북한의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으로 재개된 게 대표적인 예다.

대북확성기 방송만큼 정치적 색깔이 뚜렷이 드러난 사안도 드물 것이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중단되고,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재개되는 사이클이 반복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판문점 선언’에 따라 중단시켰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2015년 지뢰 도발, 2016년 4차 핵실험 등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 때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대북확성기 방송의 주된 목적은 휴전선 부근의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의 우월성을 알리는 데 있다. 북한 주민들이 체제의 실상을 깨닫도록 유도하려는 거다. 최근엔 대한민국의 발전상, 북한의 인권 실태뿐만 아니라 K-팝과 최신 가요 등 한류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대북확성기 방송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북한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는 내용이다 보니 북한 주민들이 듣고 내부 동요를 일으켜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남쪽을 향해 쇠 긁는 소리와 귀신 소리 등 기괴한 소음을 밤낮없이 확성기로 트는 등 말초적 대응에 나설 정도로 거부감과 민감도가 극심했다.

사실 우리 군은 지난해 11월 28일을 기해 확성기 방송의 강도를 대폭 낮췄다.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이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을 판단해 이동식 확성기 10여 대 운용을 중단하고 고정식 확성기 20여 대만 가동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이마저도 중단시킨 거다.

이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대북 정책을 추진할 거라는 건 예상했던 바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 유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어는 정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만 선제적 대북 유화 정책이 북한 정권에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대남 소음 방송을 중단했지만,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근본 원인이 북한의 대남 도발 행위였다는 점에서 북의 변화가 없으면 이 정부의 입지만 좁아질 수 있다.

그런데 좀체 납득이 안 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통일부가 납북자가족모임 등 민간단체에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요청하고 나선 거다. 통일부의 태도 돌변은 이 대통령이 지난 14일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해 모든 유관 부처에 예방과 사후처벌 대책을 지시한 것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강화도에서 탈북민 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하자 이 대통령은 관련 법령 위반 여부에 따라 엄중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에 이어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대북 전단지 살포까지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북 전단지 살포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문 정부 때 민주당이 ‘대북전단지 살포금지법’을 제정해 강제로 막으려 했으나 2023년 9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이 법의 효력이 중지됐다. 지금까지 민간단체가 주도해 온 걸 정부와 여당이 강제로 중단시키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

‘평화’와 ‘안보’는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평화’를 위해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없고 ‘평화’ 없는 ‘안보’ 또한 무의미하다. 이와 함께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우리의 부단한 노력까지 ‘올스톱’ 돼선 안 될 것이다. ‘평화’를 외치며 끌려다니다 북한의 핵무장 시간만 벌어준 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상대가 북한이라는 냉정한 판단 위에서 신중한 대북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