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바 기도회 설교] 오직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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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7일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마태복음 2장 1~6절

이태희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리바이벌코리아

우리가 어떤 나라의 역사를 “영원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로마를 “로마 아이테르나”(Roma Aeterna), 즉 “영원한 로마”라고 표현한다.

바벨론 제국, 앗시리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제국, 징키스칸의 몽골 제국. 이 외에도 수많은 제국들이 시대마다 일어났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다. 물론, 로마 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역사가들이 로마를 “영원한 로마”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 제국은 이 땅에서 사라졌지만, 그 로마 제국이 이 땅에 남긴 문화와 문명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살아 있어서, 오늘날에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것을 만나고 또 향유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공화정, 공화국, 공화주의”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한다. “Res Publica” “공공의 것” “Public Thing”이라는 의미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는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다. 즉,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공화주의라는 정치체제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바로 로마 공화정 시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로마의 공화정과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서 태어나셨고, 로마법에 따라 로마 총독과 로마 군사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자로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다. 특별히 그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는,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하나가 되어 어거스틴, 마틴 루터, 칼빈, 존 웨슬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사는 “과거사”인 동시에 “현재사”요, “정치사”인 동시에 “교회사”이며, 세상 나라의 세속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영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를 “로마 아이테르나”, “영원한 로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로마사의 세계사적 의의에 대하여 19세기 독일의 역사가였던 랑케(1795-1886)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모든 고대사는 하나의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흐름이 되어 로마사로 흘러 들어가고, 근대사 전체는 로마사로부터 다시 흘러 나왔다.”

“고대사”가 “로마사”를 통과하면서 “근대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로마사 안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오셨기 때문이다. “고대사”가 “로마사”를 통과하면서 고대사 안에 “복음”이 녹여지게 되었고, 고대사 안에 복음이 녹여지면서 근대사, 근대 문명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복음이 녹여진 근대사가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고 지중해로,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 결국에는 그 복음이 대동강을 통해, 그리고 인천의 제물포항을 통해, 대한민국의 젖줄인 한강으로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반만년 동안 우상들의 젖을 물고 살아가던 이 민족은, 어느 순간부터 복음이 녹여진 젖을 먹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인류의 역사는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이전과 그 이후가 영원토록 변화된 것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흘러 들어가는 나라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흘러 들어가는 사람마다, 가정마다, 그 이전과 그 이후가 영원토록 변화되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BC63-AD14)가 통치하던 시기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한 도시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의 이름은 바로 예수다. 그 때의 상황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눅2:1-3)

마태는 이렇게 기록한다.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2:1-6)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롯 왕은, 결국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2살 아래의 사내 아이들을 다 죽일 것을 명령한다. 로마 제국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무시무시한 정치권력 투쟁을 촉발시켰다. 이것은 기독교의 탄생과 교회의 탄생이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그 시작부터 매우 강력한 정치적인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발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행17:7)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종교적인 지도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어떤 일개 국가의 왕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의 왕이 되시는 “만왕의 왕”(King of Kings)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소동이 일어난 곳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회당”이 아니라, 헤롯 왕과 로마 제국의 정치 권력자들이 모여 있었던 “왕궁”이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리바이벌 코리아와 같은 옥외 집회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가 본격화되었다. 당연히 리바이벌 코리아도 예외가 아닐 것이고,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도, 선관위 관계자가 저의 설교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아주 담대한 정치적인 발언을 한 가지 하려고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다. 대한민국의 왕이실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왕들의 왕, 이 땅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유일한 왕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유일한 주권자, 우리의 유일한 통치자로 고백하며,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우리의 충성을 다짐하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인 것이다.

설교자들의 설교는 이 땅의 성도들은 물론 모든 민족과 백성들을 향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통치자요 주권자이심을 상기시키는, 그리고 그 분 한분에게만 우리의 모든 충성을 다 바칠 것을 촉구하는 “정치적인 연설”이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의 “법전”이며, 세례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는 일종의 시민권 선서식과 같은 “정치적인 서약”이다.

심지어 헬라어로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는 시민들이 모여 정치적, 사법적 결정을 내리는 평민들의 민회를 뜻하는 정치적인 용어였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황제는 신이었고, 그 황제를 경배하는 것이 로마 시민들의 정치적인 책임이었다. 그런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황제 숭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반국가세력으로 간주되었고, 그들에 대한 정치,경제,사회적인 박해는 제국의 공공질서와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공의로운 일로 간주되었다.

사도 바울은 단순히 그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었다. 로마 황제에 반역하는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꿈꾸는 그의 정치적인 도발 행위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복음의 본질은 지금도 동일하다. 비록 정치적인 안정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만큼 그것이 피부에 생생하게 와 닿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이 복음의 본질, 예배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정치적이다.

이 땅의 모든 정치적 격랑 속에서, 오직 만왕의 왕되신 그리스도만을 예배하고 그 분에게만 충성을 서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기독교의 정치적인 본질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물론 미국 교회를 비롯한 서구의 교회들이 교회 내의 정치적 분열로 인해 큰 홍역을 앓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교회와 정치를 결합하여 교회의 본질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와 정치의 과도한 분리”나 “교회와 정치의 과도한 결합” 모두,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 기독교의 본질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가 하나의 정치체제라는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 온 나라 모든 백성들이 우리 모두의 유일한 왕이신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게 되는,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가득해짐으로 모든 나라와 족속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왕권 아래 하나가 되어지는 정치적인 통합. 그와 같은 통합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 바로 “선교”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이 땅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주시하며, 항상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감시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 땅의 정치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어네스트 베커의 말에 따르면, 사회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종교적인 체험에서 얻었던 만족을, 로맨틱한 사랑에서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니체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게 돈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영적인 빈자리를 채울 또 다른 후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치”다.

정치 지도자를 “메시아”로 보고 정치적 정책을 구원의 교리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 활동은 단순한 정치 활동이 아니라 종교 활동이 되어 버린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서구 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공백을 “정치”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성경적인 가르침에 입각하여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동시에 세속 정치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왕의 왕”이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대한민국의 통치자이시요, 열국의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한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마치 로마 제국 시대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칼 앞에서도 로마 황제가 아닌 그리스도만을 그들의 왕으로 고백했듯이, 예배를 금지하는 왕의 직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던대로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였던 다니엘과 같이,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되고 순교했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과 같이, 지금 이 시간에도 김정은이 이 땅의 왕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만왕의 왕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북한동포들과 같이, 우리도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이 뜨거운 정치적인 현장 한복판에서, 담대하게 증언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패트릭 슈라이너 미드웨스턴 신학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어떤 정치 집단에 대한 애정이 크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보다 훨씬 작아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권력에 대해 지나치게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너무 많은 힘을 부여하고 있다. 진정한 정치적 삶을 사는 방법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함으로써, 가이사의 통치를 올바른 위치에 두는 것이다.”

신약 성경을 보면, 로마 제국의 로마 황제같은 사람이 지배하던 정치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사도들이 가이사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횟수를 세어보면,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 황제의 영향력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처럼 보여질 정도다.

1세기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주권을 매일같이 상기해야만 했다. 그들은 무역할 때마다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주고받았다. 도시 곳곳에 세워진 황제의 동상과 기념물 아래를 지나가야 했고, 로마 총독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행정적-사법적 불의를 목격해야 했다. 이런 로마의 그림자 속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행한 가장 혁명적인 행동은 로마 황제에 직접 맞서는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의 궁극적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람의 시선을 로마의 권력이 아니라, 더 위대한 권력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로 돌렸다. 우리는 이 전략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나라와 민족을 이 정치적인 위기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적인 활동.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께만 부르짖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 체제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함으로써 그들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끊임없이, 그리고 지나치게 세속 정치에 집착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이 땅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끔 뉴스를 끄고, 특정한 결정들에 대해 그렇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에 대해 때로는 무감각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시요 이 땅의 통치자임을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 가르쳐 드리겠다. 그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불안을 떨치고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불안한 태도는 결과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승리, 승리, 승리다. 예수님의 승리, 교회의 승리, 성도들의 승리다.

이것은 단순한 희망 고문이 아니라, 이미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의 작은 한 무덤에서 이미 확정된 결과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2:1-6)

독일의 작센 주에 위치한 라이프치히는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도시다. 왜냐하면, 라이프치히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느 요한 사바스찬 바하가 성가대 지휘를 했고, 또 그의 무덤이 있는 성 토마스 교회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에는 성 토마스 교회와 함께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교회가 한 곳 더 있는데, 그 교회의 이름은 바로 성 니콜라이 교회다.

1982년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5시마다 성니콜라이교회에서 열린 ‘월요 평화기도회’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불씨를 제공했던 광장 기도회다. 6명의 참석자로 시작했던 이 월요 평화기도회에는, 1980년대 후반 동독의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여러 단체가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9년 9월 4일, 사람들은 월요평화기도회가 끝난 후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앞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시민들도 함께했다. 경찰의 강력한 경고에도 대중들은 더 몰려들었고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약 1천명의 시민들이 ‘자유’를 외쳤다. 경찰의 무력진압이 시작됐고, 70명의 재야인사들이 체포됐다. 하지만 시위는 그치지 않았다.

1주 후 9월 11일 월요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월요평화기도회’가 ‘월요 시위’가 된 것이다. 비록 경찰의 체포와 강제 진압으로 그 다음주 월요일 9월 18일에는 거리행진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9월 25일, 평화기도회 후 성니콜라이교회 앞 광장에는 약 1만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저항운동은 더욱 거세져 갔다. 그 다음주 10월 2일에는 2만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심지어 유혈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라이프치히 중심부 성니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평화 기도회’는 당시 교파를 초월한 종교인사, 재야인사와 국민들이 함께 이뤄낸 민주주의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장벽 붕괴 한달 전 1989년 10월 9일, 평화 기도회 후 월요 시위에는 무려 7만명이 가담했다. 동독 시민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거대한 원을 그렸다. 작은 불씨는 커다란 불길이 되어 동독 전체로 번졌다. 무력으로 시위를 중단시키려 했던 동독 정부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운동의 승리였다. 10월 16일에는 동독 전역으로 확산됐고, 12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평화시위에 참여했다. 이날은 경찰이나 군인도 함께 참여했다.

이틀 후 동독 사회주의 권력의 중심점이었던 에리히 호네커 수상이 물러났다. 그로부터 3주 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기도회를 주도했던 성 니콜라이교회의 담임목사 크리스티안 퓌러(1943~2014)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겨자씨만큼이나 작게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정기적인 기도로 헌신한 이 작은 사역을 하나님께서 이토록 크게 사용하실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강력한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평화 혁명이며, 성경적 방법이 낳은 기적이었다.”

저는 오늘 사도 바울이 극심한 종교적인 정치적인 박해 속에서 살아가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그가 항상 기도했던 기도문을 읽어 드림으로 오늘 설교를 마치고자 한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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