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가 AI 모델 ‘R1’을 출시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이를 능가하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AI 모델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중국발 '저비용·고성능' AI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며 AI 반도체 수요 구조도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메모리 기업들의 수익성 확보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대형 기술 기업 텐센트는 최근 AI 추론 모델 ‘훈위안 T1’을 자국 시장에 공개했다. 이 모델은 딥시크 R1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지식과 추론 테스트에서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복잡한 수학 문제를 더 빠르게 풀어내는 등 고성능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훈위안 T1은 가격 측면에서도 딥시크 R1보다 저렴하게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며, 성능과 가격 모두에서 딥시크를 앞서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중국 시장에만 출시되었지만,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모니카 역시 AI 비서 모델 ‘마누스’를 내놓았다. 마누스는 딥시크 R1과 유사한 성능을 보일 뿐만 아니라, AI 문제 해결 평가에서는 미국 오픈AI의 고사양 모델 ‘딥 리서치’를 능가하는 결과를 보여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 내에서 고성능 AI 모델들이 빠르게 출시되면서, 이들 AI 시스템을 뒷받침할 반도체 수요 또한 급변하고 있다. 딥시크 R1에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 ‘H800’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가속기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4세대인 ‘HBM3’가 사용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AI 산업이 자체 가속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현지 메모리 기업들이 구형 HBM 생산에 뛰어들면서 한국 업체들의 중국 내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메모리 기업 창신메모리(CXMT)는 HBM 3세대(HBM2E)를 이미 양산 단계에 올리며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 메모리 기업의 중국 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에서의 구형 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중국 수출 비중이 미국을 앞지르는 등 높은 의존도를 보였다. 그러나 후발주자들의 기술 추격과 현지 시장 재편에 따른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당국이 최근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 경로가 더욱 좁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D램이나 낸드처럼 HBM도 구형 제품군에서는 중국이 빠르게 추격할 것”이라며 “한국 메모리 업계는 HBM3E 등 차세대 고성능 제품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해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