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보수주의(1)] ‘성경적 보수주의 운동’과 ‘개인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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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 이 글은 이태희 목사가 지난 3월15일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서 한 연설 전문입니다.

3월 15일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연설하는 이태희 목사 ©세이브코리아

1. 성경은 다음과 같은 선포로 시작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 구절은 구체적인 ‘설명’이 아니다. 친절한 ‘설득’도 아니다. 매우 거칠고 간결한 ‘선언’이다.

2. ‘선언’은 ‘설명’이 아니다. 그래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선언은 그 선언을 수용하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우리의 ‘이해’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요구할 뿐이다. 그리고 이같은 선언을 수용하기로 선택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른다.

3.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 선포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자는 그 선포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고, 이 선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죽었음을 믿는 자다.”

4. 어떤 특정한 선언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음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선언이 아닌 다른 선언을 선택하는 자, 다른 선언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5.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고 있는 동시에 무언가를 믿지 않고 있고, 또 무언가를 믿지 않고 있는 동시에 다른 무언가를 믿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 즉 ‘신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다른 말로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6.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믿음” 또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의 기원에 관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세상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세계인가?” 아니면 “자연에 의해 스스로 진화된 세계인가?”

7. 현대인들은 창조론을 ‘믿음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진화론은 믿음과 신앙의 영역이 아닌 ‘이성과 과학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나 방송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진화론만을 가르치고 언급해야 하고, 창조론과 같은 신앙은 교회나 가정과 같은 사적인 영역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8.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 믿음이기 때문이다. 창조론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성경적인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는 반면에, 진화론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없다”라는 무신론적 믿음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9. 그러므로 모든 문제의 본질은 “당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의 문제다. “당신이 갖고 있는 그 믿음이 과연 올바른 믿음인가?” 아니면 “거짓된 믿음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10. 만약에 세상이 ‘진화된 것이라면 ‘창조’는 단순히 ‘다른 믿음’이 아니라 ‘틀린 믿음’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이 창조된 것이라면, ‘진화’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될 수 있는 신념이 아니라, 진리의 이름으로 배격하고 타도해야 할 거짓된 신념인 것이다.

11. 그리고 그와 같은 거짓된 신념을 토대로 세워진 문화와 문명은 자기 파괴적인 모순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문화와 문명의 토대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12. 그런 의미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이 말씀은 단순한 ‘선포’가 아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도발적인 ‘선전포고’인 것이다.

13.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너희의 믿음은 거짓이다.” “너희의 신은 가짜다”. 그러므로 “너희의 거짓 신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이 세상의 거짓 신과 거짓 사상을 향하여 거룩한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선전포고인 것이다.

14.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 세상 가운데에는 다양한 믿음과 세계관이 존재해 왔다. 창세기의 1차 독자였던 고대 근동 지역에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은 다신 숭배자. 범신론자들이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무신론적인 세계관과 세속적 인본주의 세계관, 그리고 심지어 공산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15. 이와 같은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무신론자들을 향하여, 거짓 신을 섬기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향하여 창세기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16.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너희 유물론자들의 믿음은 거짓이다.” 온갖 더러운 거짓과 추악한 술수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모독하며 파괴하려고 하는 너희 공산주의자들의 모든 계략은 반드시 무너지게 될지어다.”

17. 창1:1은 거짓된 신념과 거짓된 사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의 영, 사탄 마귀와 그의 종들을 향하여 거룩한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18.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온 세상으로 대한민국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할 것이며, 여호와의 구원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대한민국과 온 열방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아멘”

19. 한국 교회는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여호와께서 세우신 대한민국과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게 되기를 축복한다.

20. 한국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대한민국과 세계 열방을 위하여, 그리고 그 가운데 임하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이 땅을 뒤덮고 있는 거짓과 미혹의 영, 공산주의와 사탄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 동참하는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군사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2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는 이 선포가 담고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와 법칙을 함께 창조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2. 우리는 그와 같은 질서와 법칙을 “창조 질서”라고 부른다.

23. 하나님께서는 자연세계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함께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한 도덕적인 질서와 법칙을 함께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고,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치 사회적인 원칙들을 함께 창조해 주셨다.

24.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그 분의 명령에 따라 존재하게 된 것이며, 따라서 그 분 안에서만 그 목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탐구하는 모든 학문들, 예컨대 법학, 의학, 경제학, 정치학, 물리학, 미학 등의 모든 주제에 있어 참된 진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으며, 가정, 학교, 정치, 경제, 문화를 다스리는 모든 법칙과 질서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인 것이다.

25. 그러므로 ‘진정한 지식’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와 같은 피조 세계의 ‘법칙’과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고, ‘진정한 지혜’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와 같은 초월적인 질서와 법칙을 우리 삶의 기초로 사용하는 것이다.

26. 그러므로 개인적인 안녕과 사회적인 번영을 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신적 질서와 법칙의 본질을 확신하고, 그 질서와 법칙을 우리의 삶과 사회의 기초로 사용해야만 한다.

27. 그와 같은 질서와 법칙으로 가정을 다스리고, 그와 같은 질서와 법칙으로 회사를 경영하며, 그와 같은 질서와 법칙으로 이 나라의 법을 만들고, 그리고 그와 같은 질서와 법칙대로 이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할 때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이 세상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왕 노릇하시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거듭나게 될 것이며,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온 열방에 가득하게 될 줄로 믿는다.

28.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질서와 법칙을 우리의 가정과 학교, 우리 사회의 질서와 법칙의 토대로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 보수주의 운동”의 본질이며, 바로 그와 같은 성경적 보수주의 운동만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성벽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이 성경적 보수주의 운동만이 김정은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 북한 동포들을 구원해 내어, “거룩한 대한민국, 위대한 통일한국”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정치 사상이요, 통일 운동인 것이다.

29.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생명을 걸고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제 일 창조 질서와 법칙이 있다.

30. 그것은 바로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31.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그래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33. 이와 같은 성경적인 창조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사상”을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34. 이와 같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위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신성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권 역시 성경적인 창조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3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2:15-17)

● “네가 임의로 먹되”: 행복추구권/자유권

● “먹지 말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는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제한적인 자유”다. 모든 금기와 제약을 파기하는 일종의 “해방구”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와 법칙의 제한을 받는 “제한된 자유”요, 성숙한 “자기 절제력을 가진 자유”인 것이다.

춤을 추더라도 옷은 입고 추어야지 옷을 벗고 춤을 출 수는 없는 것이다. 수영을 하더라도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해야지 맨몸으로 수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기 절제력을 가진 자유”와 금기와 제약이 전혀 없는 “해방구”와의 차이다. 바로 이와 같은 자기 절제력을 가진 자유사상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탱하고 있는 ‘법치 사상’이 나오는 것이다. 즉, 성경적인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법치사상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질서와 법칙을 이 세상 나라의 법 안에 녹여내어 이 세상 나라가,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질서와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참된 자유와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와 같은 테두리를 무시하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금기를 파기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모든 금기와 제약을 파기하는 무제한적인 해방구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죽일 것이고, 사회의 질서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죽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재판관들, 공직자들을 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하게 하셨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왜곡하거나 불의한 심판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36. 이처럼, 성경적인 창조사상, 그리고 성경적인 보수주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와 “법치”, 그리고 “사법적인 공의”, 이 세 가지의 창조 원리를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민 개개인이 참된 자유를 누리며, 공동체는 질서와 평안 속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요, 통일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37.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유물론에 입각한 전체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는 자들이 이 나라의 공직자의 권위를 가지고 중국과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들, 그리고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세력들과 연계하여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38.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법한 카톡 검열을 엄포하지 않나, 부정선거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자 국민들을 상대로 부정선거 의혹을 해명하기는 커녕,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만해도 처벌하겠다고 위협하지를 않나. 지금 대한민국의 법치와 공의는 무너졌고, 그 결과 국민 개인의 자유와 안전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39. 작년 12월 3일 윤석렬 대통령의 계엄령은 바로 이와 같은 국가적인 위기를 국민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계몽령이었으며, 이제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기 위해 3.1 운동의 정신으로 일어나, 대한민국 안팎의 이 거악의 세력들과 거룩한 전쟁을 감당해야 할 줄로 믿는다. 그와 같은 전쟁의 선봉에 서 계신 윤석렬 대통령을 위해 기도한다.

40. 이제 조만간 윤석렬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켜내고, 대한민국의 모든 불의와 부패함을 드러내어 통일 대한민국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41.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 최후 변론에서 윤석렬 대통령이 낭독한 최후 진술문의 일부를 짧게 인용하겠다.

“저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원칙, 국가안보, 핵심 국익 수호만 함께 한다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기꺼이 대화하고 타협할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에 좌파, 우파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공산당 1당 독재, 유물론에 입각한 전체주의가 다양한 속임수로 우리 대한민국에 스며드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이런 세력과 타협하고 흥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와 교역도 할 수 있고, 국제협력, 상호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스며드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국방안보만큼 중요한 정치안보입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공당이라면 이런 세력을 옹호하고 이런 세력과 손잡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