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가 날이 갈수록 국민적 열기를 확산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서 시작된 기도회는 지난 1일과 8일 주말 낮에 부산역 광장과 동대구역 광장에서 잇따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11일 천안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 평일 낮 임에도 젊은이와 여성 등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해 대통령 탄핵반대에 대한 국민적인 열망을 확인시켰다.
‘세이브코리아 비상기도회’ 측은 서울과 부산 대구 등에서 확인된 국민적 열기를 이번 주말부턴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를 비롯해 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호남 지역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내일(15일) 광주 집회를 시작으로 다음 주말인 22일엔 목포역 광장에서, 3월 9일에는 전북 전주 오거리문화광장에서 기도회가 예정돼 있다.
그런데 기도회 측이 이번 토요일 집회를 광주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에 대해 강기정 광주시장이 언어폭력에 가까운 비난과 함께 불허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강 시장은 지난 6일 SNS에 올린 글에서 “5·18민주광장에서 내란 동조, 내란 선동 시위를 하겠다고 문의해 왔다”라며 “5·18광장에서 극우 집회는 절대 용납할 수 없고 광장 사용을 불허할 것”이라고 했다.
강 시장이 기도회에 참가하는 국민을 ‘극우’ ‘내란 동조’ 세력으로 지칭한 건 그 표현의 경중을 떠나 지자체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평화적인 기도회를 ‘나치’와 ‘파시즘’과 같은 폭력집단을 일컫는 ‘극우’로 지칭한 것도 모자라 ‘내란 동조’ 세력의 ‘내란 선동’ 시위라고 규정한 건 금도를 넘은 폄훼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광역 지자체장이라는 사람이 “나치는 홀로코스트 기념공간에서 집회할 수 없다. 민주 시민에게 맞아 죽는다”라며 저주성 극언을 내뱉은 것도 충격이다. 군부 독재에 희생된 시민을 기리고자 조성된 5.18광장에서 평화적인 기도회를 하겠다는데 그걸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비유한 건 나라를 지키겠다고 일어선 일반 국민에 대한 저주이자 스스로 광주 민주 항쟁의 정신을 모독한 것이다. 기도회 참석자들이 누구를 죽였기에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에 비유할 수 있는지 경악할 따름이다.
이에 대해 ‘세이브코리아 기도회’ 주 강사인 전한길 씨는 모 방송에 출연해 기자의 질문에 “광주시민들이 원했던 5.18은 민주화다. 독재에 맞섰다”라며 “그러면 얼마든지 와서 이야기하라고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며 “(시장이) 오지 말라는 것이 독재고, 광주시민들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기도회 참석자를 ‘쓰레기’로 비유한 국회의원도 있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박균택 의원은 지난 10일 밤 자신의 SNS에 ‘광주시장님, 극우 집단에게 인정을 베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집회의 자유를 부정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장소를 안내해 주시면 어떨까요”라며 지도와 함께 ‘광주광역시 쓰레기 매립장’ 주소를 게시했다. 자신의 지역구민 중에도 이 기도회에 참석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이들 모두를 한데 묶어 ‘쓰레기’ ‘폐기물’로 조롱한 국회의원의 의식 수준이 참으로 놀랍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그것이 대구에서는 되고 광주라서 안 되는 법은 없다. 지자체장은 5.18 조례에 근거했다고 하는데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5.18 광장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것이 어떤 조례 조항에 저촉된다는 것인지 합당한 근거를 대기 어렵다.
광주는 대한민국에 속한 도시이지 별개의 나라가 아니다. 진보 극좌단체가 다른 어느 도시에 와서 집회를 하겠다고 한들 어느 지자체장이 오면 맞아 죽을 거라는 겁박을 서슴없이 하겠는가. 이런 발언은 시장으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따지기에 앞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광주시민을 욕되게 하는 짓임을 알기 바란다.
최근 국민적인 탄핵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각종 탄핵반대 집회에 젊은 세대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나자 야당과 주류 언론들까지 ‘극우’ ‘극렬’ 등의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데 입법 독재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에 참여는 국민을 향해 이토록 극단적인 언사를 총동원해 갈라치는 건 지금 자신들 앞에 전개되는 상황이 적잖이 당황스럽고 초조한 반증일 것이다.
’극우‘의 사전적 의미는 전체주의를 표방한 폭력집단이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을 수단화하는 데 있다.
그런데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매 주말마다 전국을 돌며 기도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어째서 ’극우‘이고 ’내란동조‘ 세력인가. 지금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51%까지 나왔는데 국민 절반이 ’극우‘이고 ’내란 동조‘ 세력이란 말인가.
’세이브코리아‘ 측은 내일 광주집회를 5.18민주광장이 아닌 금남로 무등빌딩 앞에서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곳은 도로여서 시장의 불허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게 있다. 불과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5.18 광장에서 진보단체가 맞불성 탄핵 찬성집회를 열게 돼 자칫 양측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세이브코리아 측이 주최한 서울 부산 대구 천안 기도회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가운데서도 여태껏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끝까지 평화적인 집회 분위기를 잘 유지해 ‘극우’라고 폄훼했던 이들의 입을 부끄럽게 만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