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의 문제점

오피니언·칼럼
칼럼
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

서병채 총장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여러 번 컨퍼런스를 개최했고, 또 미국의 컨퍼런스에도 여러 번 참석했었다. 지금도 어느 나라이고 간에 컨퍼런스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좀 우스운 얘기인데, 유명한 외국인 강사의 컨퍼런스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실제적으로 그 강사는 오지 않고 비디오로 보여주는데, 수백 명의 목회자들이 앉아서 시청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현실이구나’라는 생각도 가진 적이 있다. 참석자들 중에는 미국 강사가 직접 오는 걸로 알고 왔다는 목사님들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컨퍼런스라는 것은 필요는 하지만, 좀 아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컨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위한 방향과 비전을 가르쳐 주는 주강의나 워크숍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즉, 참석자들은 남의 것을 빌려다가 본인 목회의 모델로 삼았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소위 “따라 한다”는 인상을 교인들에게 주게 되었다.

컨퍼런스는 어쨌든 필요하니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그 이후인데 사람들이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강사들이 제시한 비전보따리를 복제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때 결과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는 물론 아프리카 교회들도 미국의 큰 교회를 따라 하려는 열망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좋은 프로그램으로 교회가 성장하여 그 노하우를 다른 교회들에게 나누어주려는 마음은 좋은 것이라 보여진다. 또 많은 목회자들을 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좋게 이루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컨퍼런스의 내용 속에는 우리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의도가 아닌 것 같다. 물론 강사들은 참석자들에게 그 모델을 통째로 “복제하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수백 교회들에게 팔고 있는 것같아 마치 비즈니스 같이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컨퍼런스에 한 번 가보면 그들이 준비해 놓은 자료 판매대에 수백 명의 목회자들이 책과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 자료, 비디오, 오디오 등을 사느라고 야단법석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컨퍼런스에서 강의하고 추진하는 것이 개교회에 가서는 그 효과가 그 교회가 기대만큼 안 나타난다거나 어떤 곳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효과있는 프로그램을 여기저기에 갖다가 대입해보면서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성공한 교회의 사례를 제시하는 컨퍼런스 주관자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목회모델을 “활용하기 위한 자기이해와 본래 생각의 필요과정”을 잘 견뎌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컨퍼런스에 와서는 교회들에게 그런 과정을 거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기간에 마스터할 수 있다는, 소위 상품으로 팔아버리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 전체 과정에서 필요한 “관계성, 창조성, 그리고 에너지”의 요구까지 제시했다가는 그 상품을 안 사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일까!

또 하나는, 어떤 교회는 컨퍼런스 참석 후 부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전보다도 더 혼란스럽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여러가지 컨퍼런스가 분명히 해주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게만 해주었다는 것이다. 교회들을 들어가보면 어떤 컨퍼런스에 참석했는지 바로 알 정도로 여러 가지 배너가 걸려 있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큰 교회들의 성공은 그들을 복제하려는 다른 교회들에 상당한 유혹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목회 패러다임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과정에서 주최 측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할 것 같은 염려에서이다. 혹시나 컨퍼런스에서 제시하는 많은 것들이 더 복잡한 미로로 인도하거나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