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통제권 반환을 요구하면서 파나마에서는 과거 미국 침공의 악몽이 되살아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운하 환수를 거론하며 군사력 동원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되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나마 정부와 운하 관리 당국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며, 현재 운하는 파나마가 100%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카우르테 바스케스 모랄레스 파나마운하 청장은 "중국이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1989년, 조지 H.W. 부시 당시 대통령은 마약 퇴치를 명분으로 미군 2만여 명을 투입해 파나마를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200여 명이 사망했으며, 유엔은 이를 "중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당시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는 체포되어 미국으로 압송됐고, 이후 30여 년간 수감 생활을 하다 2017년 사망했다.
침공의 상처는 여전히 파나마 주민들에게 깊게 남아 있다. 노점상인 이사이아스 블래드는 "트럼프는 파나마 국기를 존중해야 한다"며, 미군 헬기와 총격 속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공포를 회상했다. 그는 "미국이 다시 한 번 중남미를 지배하려고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 해상 무역의 약 5%를 차지하며, 그중 70% 이상의 통행이 미국 항구를 오가는 데 사용된다. 파나마는 1999년 운하 운영권을 미국으로부터 인수했으며, 현재 중국 기업 CK허치슨홀딩스가 주요 항구 두 곳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파나마 당국은 중국이 운하를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파나마는 2017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이후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중국은 파나마에 대형 컨벤션 센터를 건립하고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세우는 등 인프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운하에 중국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주권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문제와 함께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편입도 주장하며 영토 확장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국제사회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77년 1달러에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에 넘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는 마코 루비오 신임 국무장관이 첫 해외 순방지로 파나마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들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문은 파나마 운하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파나마는 여전히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로, 미국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며 미국 기업과 은퇴자들에게 인기 있는 국가다. 하지만 미국이 운하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양국 관계는 파탄에 이를 수 있다. 파나마의 한 고위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보복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운하 운영권 양도 조약에 따라 미군 함정은 통과 우선권을 갖고 있지만,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 규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중남미와 카리브해를 관할하는 미국 남부사령부는 1997년 파나마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전했으며, 현재 중남미 내 미군 기지는 온두라스에 위치한 마약 퇴치 기지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