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생명과 건강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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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에서 병원을 찾은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암 수술을 며칠 앞둔 환자가 병원으로부터 무기 연기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민 건강과 생명의 보루인 병원이 마비 지경에 이르면서 이른바 ‘의료 대란’이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대란(大亂)이란 말 그대로 큰 난리다. 전쟁이 일어나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거나 지진, 기근, 해일 등 자연재해로 집단적인 위기가 닥치는 상황 말고 다른 상상을 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병원에 의사가 없어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인재(人災)라는 단어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태는 정부가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씩 증원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소위 ‘빅5’로 꼽히는 서울의 5대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근무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상태. 병원 측은 환자 치료가 아니라 이런 기막힌 상황을 설명하느라 연일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예정된 수술이 아예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사태에 한시가 급한 환자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지경이다.

하지만 병원의 모든 기능이 완전 마비된 것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수술일정에 차질이 발생하고 위급한 환자들이 들어오는 응급실 기능이 축소된 건 사실이나 두 몫 세 몫씩 감당하는 의사들이 아직은 병원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 외에 병·의원들도 아직은 정상 진료중이다.

그런데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묵묵히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이 과로에 지쳐서 쓰러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그렇게 되면 그땐 정말 대책이 없다. 대형병원의 의료공백 사태가 지방과 동네 의원까지 휩쓸면 정말 모든 병원 문이 닫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의사가 없어 병원이 환자를 돌려보내는 상황은 아직까지는 가정이지만 곧 닥칠 불안한 현실이다.

의료계의 집단 반발에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의사 수 부족으로 많은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부와 의료계 충돌의 핵심 쟁점은 의대 증원 2000명이다. 이는 지난해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 수요를 조사한 결과치라고 한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 고령화에 따른 의료이용 증가 등 의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적이란 입장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보건 산업 수요에 대응할 의료인력까지 포함하면 2035년까지 약 1만50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계획을 처음부터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건 아니다. 지난해 1월부터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와 28차례나 협의 테이블을 마련했다. 문제는 서로의 입장을 청취하고 한 걸음씩 다가간 협상이 아니라 서로에 불신만 키우는 갈등의 장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협상이 깨진 후 정부는 의사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국민을 상대로 현 상황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의대 증원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말에 대체로 국민이 수긍하는 분위기나 의사들의 마음을 열 방도를 포기하고 국민 여론으로 압박하는 건 ‘의료 대란’의 출구전략으론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의사들도 가운을 벗고 의사면허를 반납하겠다고 하는 등 정부를 향한 투쟁의 자세를 누그러뜨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 속 사정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나는 의사들의 입장을 지지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사태를 우려하는 교계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마주 달려오는 기차처럼 부딪치는 상황이 우려된다”며 “의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면 그 피해는 아무 잘못 없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볼모가 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금도 늦었다며 의대 증원을 더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들은 수를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필수의료분야 배치와 수가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 그런데 이 싸움의 피해자가 국민이란 사실은 잊은 게 아닐까.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벌써 여기저기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문이 현실이 되면 그 땐 ‘의료 대란’을 일으킨 책임자에 대한 국민적 원성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다. 지금이 정부와 의사가 편을 갈라 싸울 때인가. 의사는 무조건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정부는 그런 의사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 단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의료 개혁에 나서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