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를 가다1] 즐거운제자교회 송삼용 목사

교회일반
교회
미주 기독일보 기자
“고통스러웠던 10년의 목회 경험, 진정한 70인 제자 기르는 영적 요람으로”

라스베가스 즐거운제자교회 송삼용 목사와 사모 도현아 목사 ©미주 기독일보
미주 기독일보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미주 각 지역에서 성실히 목회하고 있는 교회들을 돌아보고 한인 목회자들의 고군분투기를 기록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인밀집 지역이 아닌 도시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목회자들을 우선적으로 만나 보도한다. 첫번째 순서로 라스베가스 즐거운제자교회 송삼용 목사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송삼용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라스베가스 즐거운교회제자교회는 대형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70명을 찾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교회다. 한인인구 3만 명으로 추산되는 라스베가스에서 많은 수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소수여도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를 기르겠다는 것이 담임 송삼용 목사의 목회 방향이다. 송삼용 목사가 라스베가스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한 것은 2011년, 그간 특수 목회 중에도 특별한 과정들을 거쳐왔던 그가 최근 목회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 서원을 드린 것이 70명의 제자를 찾아 양육하는 것이었다. 현재 그의 설교는 해당 지역에서 꾸준히 찾는 이가 있는 스테디셀러 설교가 됐다. 한인마트 등에 설교 CD를 놔두면 곧 잘 없어져서 CD 갯수를 50개 까지 늘렸는데 그 마저도 잘 나가게 되자 청년들이 유튜브를 개설해 송 목사의 설교를 올리고 있다. 그의 사모인 도현아 목사 또한 풀러신학대학교에서 내적치유를 전공한 박사로서 즐거운교회제자교회 목회를 돕고 있다. 특히 도 목사는 지역에서도 유명한 상담가로 그 전공을 살려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라스베가스 한인들의 치유를 감당하고 있다.

이 부부의 라스베가스 정착기는 정말 특별하다. 샌프란스시코에서 박사과정을 다 마쳐갈 시기에 미주에 치유사역이 필요한 지역이 있다는 당시 교단 어른의 말만 듣고 무작정 시작한 목회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당시 조이풀교회가 교인들이 다 떠나면서 없어질 위기라는 소리를 들었고 송삼용 목사와 그의 사모 도현아 목사의 전공이 정말 필요한 곳이라는 설명만 듣고 라스베라스로 향했던 것이다. 10명 정도의 성도들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왔지만 성도는 1명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렇게 라스베가스에서 목회를 시작했지만 일반 성도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홈리스들이 주로 교회를 찾아왔다.

“당시 교단 어른의 말이 라스베가스가 정말 치유사역이 필요한 곳이라고 했었습니다. 도박중독에 빠지거나 가정파탄으로 힘들어하는 영혼들이 많다고 그들을 위로해주고 치유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달 동안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홈리스를 선택하든 우리를 선택하든 결단하세요” 험난한 라스베가스 첫 목회

막상 라스베가스에서 시작된 목회지만 안되어도 이렇게 안될 수는 없었다. 애시당초 홈리스 사역을 하고자 했던 계획은 없었음에도 새벽으로 또 저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홈리스 뿐이었다. 측은한 마음에 아침을 제공한 것이 소문이 나면서 홈리스들이 자기 친구들을 데려와서 그 숫자가 더 늘게 됐다. 일반 성도들이 그 사이에 추가로 오기도 했지만 결국 “교회가 제대로 되려면 홈리스를 쫓아내야 한다”는 충고만 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 사이 교회의 렌트비는 자녀들이 벌어서 감당해야 했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일반 성도들이 송 목사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홈리스를 받을 것이냐, 다 쫓아내고 일반 성도들만 남길 것이냐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송 목사는 기도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딱 떠올랐습니다. 한참 있다가 제가 오히려 이렇게 물었습니다. ‘권사님들이랑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 안 나와도 다른 교회에 가서 열심히 섬길 수 있지만 이 홈리스들은 누가 받아주겠습니까? 여러분들과 같이 있으면 너무 좋지만 목사의 양심상 저 분들 내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그랬더니 그 분들은 라스베가스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결국 다 흩어졌습니다. 초창기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홈리스들 중에는 도박중독자들도 많아서 그런 어려운 사람들 다 받아주고 상담해주고 했지만 지역에서 오히려 가짜 박사라고 헛소문이 나서 곤욕을 치룬 적도 있었지요”

그 과정에서 신기한 일들도 많았다. 목회를 시작한지 1년 정도 지나자 이제는 렌트비도 더는 내지 못할 형편이 됐을 때 전혀 예상에 없던 독지가들이 와서 렌트비를 냈다. 그리고 음식후원이 끊이지 않았다. 송 목사의 말에 따르면 어디서 어떻게든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왔다고. 덕분에 렌트비는 해결하지 못해도 교회 냉장고에 음식은 항상 꽉 찼다고 한다. 간혹 독지가들의 손길이 있다해도 결국 장기적으로 렌트비 해결책이 나지 않자 문을 잠그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에 하나님이 이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야 너 군대 갔다왔지? 여기 라스베가스는 영적인 전쟁터다.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됐는데 야전병원 의사인 네가 사람들을 치료하지 못하면 누가 하겠느냐’. 제가 야전병원 원장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저는 뭐 먹고 살죠’라고 물었습니다. 야전사령부는 본부인 하늘에서 주면 먹고 없으면 못 먹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듣고보니까 그랬죠. 실제로 보급품들이 정말 숨넘어 갈 때쯤이면 도착했습니다. 카드를 돌리다 돌리다 더는 안될 정도로 꽉 차면 누가 와서 1만 불을 헌금하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두번째 연단과정은 상담목회… 이후 교회의 방향성 정립

하지만 교회 건물을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되면서 이 홈리스 사역도 중단됐다. 건물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곳이 넬리스 공군기지와 가까워 지리적으로 홈리스들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건물 사용 조건에 따라 교단도 이때 미국교단인 제자회 (Disciples of Christ)로 가입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지역 공군부대 미군들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한인 여성들이 다수 교회를 나오게 됐다. 라스베가스 두번째 목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두번째 여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은 예삿일이고, 또 술을 달고 살면서 밤낮으로 자기 신세에 대한 하소연을 하는데 보통 3-4시간은 기본이고 6시간 이상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담목회는 우선 모든 고민들을 다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런 상담의 과정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교회를 사용하다보니 새벽예배도 못드리고 상담할 시간에도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제약이 컸다. 도저히 이대로는 사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1년6개월만에 독립해서 새 건물로 나오기로 결심했다. 해당 미국교회가 워낙 렌트비로 어렵게 굴자 교단 본부에 하소연한 것이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하소연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사역에 노회장이 감동을 받게 됐습니다. 자기들이 했어야 할 일이라면서 우리 교회가 새롭게 건물을 찾으면 렌트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왔습니다. 렌트비를 보장받고 현재 이 곳에 온 것입니다. 오자마자 교회의 문들을 다 열어 두었습니다. 저는 엘에이에서 공부할 때 교회들이 다 문을 닫아 놓아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었습니다. 누가 그러다가 마이크 시스템을 도둑맞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는데 도둑이 든 것을 예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짜 기도하고 싶을 때 마음껏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됐어요. 그래서 이 곳에서는 항상 24시간동안 히터나 에어컨을 틀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힘들면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권면하고 있고, 또 항상 예배당 반대편 방 냉장고에는 먹을 것을 넣어둡니다. 그리고 유학생들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 김치랑 햇반도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차를 마시고 먹고 싶을 때 또 먹는 그렇게 오픈된 교회로 만들어 갔습니다”

새로운 곳에서는 사모 도현아 목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라스베가스에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LA 정신건강미션센터 지부를 교회에 만들었다. 엘에이와 달리 라스베가스에는 한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상담센터가 없어 꼭 필요한 일이었다. 현재 도 목사는 라스베가스 지역에서 다양한 상담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또 교회에서는 목요일마다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아트 테라피 클래스를 열어서 믿지 않는 이들도 같이 미술을 배우면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70명 제자 세우기 위해 성경공부에 올인한 교회

늦깎이 신학생으로 목회의 길을 걷기 시작한 송 목사가 라스베가스에서 우여곡절 끝에 목회 10년차를 맞았을 때였다. 자신의 사역을 뒤돌아보니까 이사만 다니고 라스베가스만 공부하게 된 것이 다 인 것 같았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목회의 열매가 없고 앞으로는 정년이 10년밖에 안 남았다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을 때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다.

“잘하는 것을 하고 가르치라고 그리고 70인의 제자를 라스베가스에 세우라고 하는 강한 비전이 마음에 세워지게 됐습니다. 70인을 제자로 훈련시켜서 말씀으로 다져두라는 것이 마음 안에 들리는 음성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그 사람들이 제자가 되어 움직이면 라스베가스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새벽예배 성경공부팀, 이것이 우리교회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즐거운제자교회에는 새벽예배를 드리고 7시부터 성경공부를 하는 성도들이 많다. 새벽예배에는 주일예배와 비슷한 인원들이 나와서 공부를 하는 등 성도들의 헌신도가 매우 높은 교회다. 수요일에도 6시 예배 이후에 8시까지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주일에도 점심을 빵이나 계란으로 간단히 해결하면서 다 성경공부에 매진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바쳤던 험난한 목회의 길을 걸으면서 송 목사는 한 가지 더 하나님께 결단하고 서원했다. 그것은 바로 후임자를 위한 교회 건물 매입이었다.

 “저는 이렇게 고생했지만 후임자는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이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대를 메고 교회 건물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교회를 보통 산다고 하면 성도들 다 부담이 될 것인데 성도들에게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든지 하겠다고 했는데 다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요”

송 목사가 이런 마음을 가진 후 얼마 후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회 건물은 테슬라로 팔리게 됐고 곧 건물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교단에 건물을 사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돈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송 목사는 ‘돈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퇴직금10만불을 교회 건물을 위해 내놓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면서 교단본부에 건물을 좀 찾아 달라고 했다. 송 목사의 진정성을 알아본 교단본부에서 교회건물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군데 후보가 나왔지만 기대하던 조건에는 충족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하나님이 또 다른 놀라운 길을 열어주시게 된다. 10여 년 전 라스베가스에 올 때만해도 5에이커 땅에 성도들이 많던 한 교회가 그 사이에 갑자기 성도들이 줄어들어서 교회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고 교단 본부에서는 이 곳을 즐거운제자교회와 연합해서 교단의 미션센터로 운영하도록 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현재의 미국교회도 유지하고, 즐거운제자교회도 사용하고, 교단의 미션센터로도 활용하는 좋은 방안이 마련된 것이다.

“하나님은 꿈을 꾸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라스베가스 목회를 통해 체험했습니다. 현재 라스베가스에 한인 신학교가 부족한데 신학교 분교나 평생교육원을 만들어 성경공부도 하고 다양한 미술 및 음악 클라스를 열어서 한인들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애초에 이런 마음은 있었지만 건물이 감당이 안되던 차에 미션센터라는 큰 기회를 결국 하나님이 주시게 됐습니다. 미국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을 때에 작은 한인교회가 거꾸로 교회를 사고 있는 것에 감동해 미국교단이 우리를 도와주자고 마음을 모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70인 제자를 세우는 것도 이 과정 중에 하나님이 움직이셔서 반드시 응답될 줄 믿습니다. 라스베가스가 돈에 오염된 도시인데 강력한 신앙으로 영적인 정화를 해줄 수 있는 진정한 제자들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