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i 운동화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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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작가(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대변인, <문화는 너다> 저자)
황선우 작가

신문 기사를 하나 봤다. 요즘 학교에서 개근상 받으면 “가난해서 여행 못 가니 받는 상”이라 놀림받는다고, 집이나 부모님 차에 따라 아이들 계급도 나뉜다고, 그래서 아기 낳기 싫다고 하는 분의 인터뷰.

그분의 심정 충분히 이해된다. 이러한 학교 상황 당연히 잘못됐고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분께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기 가지는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자녀에게 맞춰주려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고, 그리고 부모인 당신께서 바로 서 있다면 자녀는 절대 엇나가지 않고 정말 멋진 삶을 살아갈 거라고.

내가 경험했던 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30명 정도 되는 우리 반에서 나는 저소득층 가정 3명에 속해 무료 운동화를 받았다. 무려 didi라는 메이커의 운동화였다. 원더걸스의 가 한창 유행했던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를 개사하여 노래 불렀다.

‘텔미 텔미 테테레테테 텔미’가 아니라,
“디디 디디 디디릿디디 디디.”

나는 그 저소득층 3명에 끼고 싶지 않아 “나는 이 신발 가지고 집에서 바퀴벌레나 죽여야겠다”고 말했다. 그 때쯤부터 우리 집이 점점 작아졌고, 모든 게 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나를 포함한 소수의 몇 명만 메이커 교복을 못 입는 일이 생겼다.

크게 엇나갈 뻔했던 시기,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셨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나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다. 나의 청소년 시절, 하나님은 특히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굳게 지켜주셨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셨다. 그렇게 집에 와서는 밥을 정말 맛있게 차려주셨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꼭 가져주셨다. 그런 와중에 일요일은 교회 유아부 교사로 하루 종일 섬기셨다.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부분은, 어머니가 늘 감사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쁘고 정신 없이 살면서도 정작 돈이 채워지지 않을 때가 많았을 텐데, 늘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이런 삶을 보고 자란 내가 어떻게 멋지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나. 보고 자란 게 너무나도 멋진 삶인데.

어릴 적 저소득층 가정에 속하며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상처가 될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게 엄청난 추억이 되었다. 상황과 무관하게 나는 비전을 성취하며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나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기에 열등감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비전을 성취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에게 비전을 심어주셨고, 나에게 가장 알맞은 축복을 주셨으며 주고 계신다. 성인 되어 혼자 서울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쉬지 못하며 대학 다닐 때도, 돈 한 푼 없이 대학 졸업 3개월만에 결혼하던 때도, 여전히 가진 게 없음에도 아기를 갖고 싶어하고 실제로 아기가 생겼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던 때도, 벌써 아기를 더 갖고 싶어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만 받아야 할 축복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축복이 다가가고 있다. 그 축복을 통한 기쁨을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