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신약학 백서(5)

오피니언·칼럼
기고
소기천(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한국교회정론 대표)

(7) 고린도전서 12장 27절

소기천 교수
고린도전서 12장 12-26절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각 지체가 어떻게 교회 안에서 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5절은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한국초기교회에 연합과 일치에 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은 31절까지 이어지는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여러 가지 직책들’에 관해서 언급하는 단락의 첫 구절이다. 27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27절상반절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27절부터 31절까지 한 단락의 첫 구절로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유기체인 몸에 비유하고 있다. 27절하반절은 유기체인 교회가 어떤 기능을 유지하는 지를 보여주며 역할의 다양성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셩교젼셔>의 27절 상반절에서 “키리쓰토의 신톄”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몸’이란 뜻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은 헬라어에서 주격 소유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뜻은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몸이라는 의미이다.

<예수셩교젼셔>의 27절하반절에서 “각기 치톄가 되라”는 표현은 당시 한글번역 성서에 나타나 있는 특징이다. ‘각기 지체가 되라’는 명령법의 표현인데, 이러한 번역은 당시 한국초기교회에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라’는 명령으로 들려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말 번역인 개역과 개역개정에서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헬라어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서 반복적인 언어를 통해서 의미의 강조를 나타내고 있다.

(8) 고린도전서 12장 26절

이제 방위량이 1907년 평양사경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순서를 따라서 고린도전서 12장 26절의 석의적 의미를 간단하게 고찰해보자. 당시 한국초기교회 성도가 읽었던 <예수셩교젼셔>의 고린도전서 12장 26절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당시에 강유문과 방위량 사이의 갈등, 강유문과 김씨 사이의 갈등, 길선주와 친구 부인과의 갈등 등 많은 불화 속에서,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회개하고 용서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26절은 12절에서 26절로 이어지는 한 몸이 지닌 많은 지체에 관해 언급하는 단락의 마지막 절이다. 성령의 은사가 다양한 것을 몸의 지체가 다양한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단락이다. 이 구절도 27절과 마찬가지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당하고(26절 상반절), 둘째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한다(26절 하반절)는 말씀이다. 이 구절은 27절보다 언어유희가 더욱 두드러진다. 우선 26절의 상반절과 하반절이 서로 상응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유희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인 교회가 지니고 있는 연대성을 강조하는 언어적 표현이다.

<예수셩교젼셔>의 26절 상반절의 구절은 신앙공동체에서 한 사람이 고난을 받으면 모든 사람이 고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신앙공동체가 운명 공동체인 것을 강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다. 누구나 당하는 고난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운명을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난을 짊어지고 가는 자세가 성숙한 모습이다. 이러한 설교를 통해서 방위량은 한국초기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약한 자들을 돌봐주고 자기의 죄를 회개한 자들을 용서해 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예수셩교젼셔>의 26절 하반절의 구절은 신앙공동체 안에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도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구한말의 한국초기교회에서 영광스러운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 무엇보다도 교회가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었기에, 평양에서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교회가 계속해서 나뉘고 있었다. 또한 1901년부터 평양신학교에서 공부를 해오던 7명의 신학생이 1907년 6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장대현교회의 시무 장로인 길선주도 1903년부터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졸업예정자이었다. 그러므로 한 지체가 얻는 영광으로 모든 지체가 즐거워한다는 내용은 이미 한국초기교회 안에서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감사의 조건이었다. 이러한 ‘지체의 연대성’에 관한 설교를 통해서 방위량은 서로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는 일이 신앙인의 덕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9) 연합과 일치를 이룸

자기 죄를 회개하기도 한 방위량은 선교사와 조사 간에, 목사와 장로 간에, 중직자와 평신도 간에 반목하고 증오하는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교회의 화평과 일치를 이루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하였다. 한국초기교회에서 의지할 곳 없는 민심은 방위량이 한 이러한 영적인 설교를 통하여 마음의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였다. 1895년 당시에 발간된 한국 최초의 장로교 찬송가인 <찬셩시>에 베어드(Annie L. A. Baird)가 한글로 창작한 다음의 찬송이 실려 있다.

1. 멀니멀니갓더니 곤하고쳐량하며 슬푸고도외로와 뎡쳐업시단니니
2. 예수예수우리쥬 곳갓기히오셨셔 쉬떠나지맙시고 부형갓치되소셔
3. 예수예수우리쥬 셥셥하여울때에 눈물씨셔주시고 날반갑게하쇼셔
4. 단니다가쉬일제 혼자갑갑한곳에 홀노잇게맙시고 기리보호하쇼셔

이 찬송을 베어드가 한글로 창작하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미국 선교사가 어떻게 이같이 한국어를 잘할 수 있었느냐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더욱 더 그 가사가 한국인의 정서에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이 찬송은 당시에 흉흉한 민심을 위로하고, ‘통화 자복’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추구하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1907년 평양사경회에서 성도들은 위의 찬송을 뜨겁게 부르면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었다. 당시의 사경회 순서에 관해서, 방위량은 “새벽 기도회와 30분 정도의 찬송 그리고 3시간의 성경공부”가 진행되었다고 한다.고 한다. 이런 대규모의 사경회가 진행되는 동안 1월 6일(주일)-15일(화)에는 최대 1,500명의 남성들이 참여하는 저녁연합집회가 있었다. 선교사들의 정오 기도회로 시작된 집회가 평양 전체에서 몰려든 남성들에 의해 도사경회 형식으로 발전하면서 뜨거운 성령의 임재가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교회에 정착된 사경회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오전 5시-6시 새벽기도회, 9시-10시 성경공부, 10시-10시 45분 기도회, 11시-12시 성경공부, 오후 2시-3시 성경공부, 그 후에 축호전도. 문자적 해석인 성경공부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요약 설명을 통한 ‘한 절 한 절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공부하고 질의 토론 시간’을 가졌다. 당시 사경회는 장대현교회에서 나뉜 평양 시내에 있는 여러 장로교회가 모여서 연합집회의 성격으로 집회가 진행되었다. 인근 교회가 연합집회의 성격으로 모인 사경회는 일찍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이 되었는데, 열흘 동안 지속된 사경회는 새벽과 낮과 밤 시간에 쉬지 않고 이어졌다. 성경 말씀을 배우려는 열정으로 한국초기교회의 성도는 추운 겨울의 매서운 눈밭도 마다하지 않고 수백 리를 걸어서 자비량으로 여비와 등록비를 마련하여 참석하였다. 이 같은 열정은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이 이른 시일 안에 문자적 해석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게 하였다.

한국인에 의해 성서가 번역되어 반포된 한국초기교회는 성서를 읽고 배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이러한 열심이 사경회의 출발이었다. 곧 한국초기교회는 국가적인 격변기에 사경회를 통해 성서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공적인 회개를 통한 교회 갱신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러한 회개에는 당시에 만연되었던 임박한 종말론이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곧 한국초기교회는 종말의 임박한 기대감 속에서 후천년설과 전천년설을 오가며 혼란스런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종말론에 입각한 성서해석은 한국초기교회에 뜨거운 성령강림 체험을 통하여 용서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서 백만인 구령운동과 같은 전도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디는 1903년 원산사경회의 불씨를 일으킨 선교사이었고, 그 불씨가 1907년 평양사경회에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평양사경회를 기점으로 한국초기교회는 성서에 기초한 말씀 중심의 교회부흥을 이루어 나갔다는 점에서 세계선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1907년 평양사경회 전후의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은 문자적 해석을 기반으로 누가복음을 읽고 그 말씀을 실생활에 그대로 적용하는 실천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한국인에 의해 성서가 번역되어 반포된 한국초기교회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곧 성서 사랑이 한국초기교회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로마 천주교회와는 달리 한국초기교회는 1884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이 땅에 발을 딛기 전에 이미 <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셔>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사경회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사경회는 한국초기교회에서 성서를 실생활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풍전등화와 같았던 시대적 상황이 암울하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방위량이 장대현교회에서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을 중심으로 “불화와 연합”이라는 설교를 한 것이, 평양사경회가 ‘통회와 자복’이라는 한국초기교회의 전무후무한 갱신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영적 부흥은 후에 백만인 구령운동과 같은 전도운동으로 이어져서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연구 자료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숱한 전쟁을 치르고 민족의 격변기를 지나면서 자료가 소실된 까닭도 있지만, 필자는 신앙의 훌륭한 선친들을 가진 직계후손들이 그 자료를 보존하는데 무관심한 현실을 지적하고 싶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당시의 상황을 아는 목격자들과 담지자들(tradents)이 현존하고 있는데, 그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구술자료를 녹취하여 문서로 남기는 작업을 해서 후세의 역사에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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