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현실을 왜곡하려는 젠더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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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 교수

의학적으로 반대 성호르몬 투여나 수술을 통해 남자를 여자로 혹은 여자를 남자로 성을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하는 “성전환”이라는 직접적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젠더이념 활동가들은 “젠더확인치료”라고 완곡하게 부르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의료적 접근으로 완전한 성전환이 불가능함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남성에서 고환절제술과 질형성 성형술을 하더라도, 임신이나 성적인 쾌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당사자들은 잘 모른다. 추가로 가슴 성형술을 받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여성처럼 보일 뿐이다. 완전한 여성이 되려는 욕망은 얼굴 성형, 팔다리 성형, 피부 시술 등 끝없는 추가 수술과 막대한 비용이 더 필요할 뿐이다.

그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시작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술 전부터 시작해서 수술이 끝나고, 평생 여성 호르몬을 투여받아야 한다. 남성 호르몬을 합성하는 주 장기인 고환을 절제하고, 많은 양의 여성 호르몬을 외부로부터 투여받는 동안은, 남성으로의 성징이 억제되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는 항상성 유지를 위해 시상하부-뇌하수체-호르몬 분비기관 사이의 연동으로 자동 조절되게 디자인되어 있다. 그런데, 필요하지 않은 시기에 많은 양이 외부에서 투여되면, 과잉 호르몬에 의해 항상성이 깨어지고 만성 대사성질환이 발생하기 쉽다. 호르몬을 장기적으로 투여받은 성전환자들 대부분은 호르몬 투여가 10년 이상 지속되면 만성질환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질환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반대 성호르몬 투여를 멈춰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동안 여성 호르몬 투여로 인해 억제되고 있던 우리 몸의 100조 개에 이르는 모든 세포 속 Y-염색체에 존재하고 있던 남성 호르몬 생산능력이 다시 켜지고, 원래 성의 특성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된다. 이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결국 “젠더확인치료”라는 것은 “네가 그걸 원하니 우린 확인만 해 줄게.”라고 자신들은 책임이 없음을 암시하고 싶은 것이다.

둘째, 생물학적 성과 성별(젠더)을 분리함으로써 사람들이 현실을 보는 방식을 바꾸려는 언어 왜곡의 시도일 수도 있다. 이 언어 왜곡의 이면에는 세상에는 어떤 진리도 확실하지 않으며, 진리는 각자 의미를 부여하는 바에 달려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처럼 확실한 현실적 차이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다면, 현실의 모든 구분(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혹은 또 다른 구분)을 다 부정할 수 있다. 젠더이념의 투쟁 목표는 겉으로 드러난 생물학적 성의 해체를 넘어, 단어의 의미 자체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언어의 왜곡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하나의 단어가 실재하는 사물이나 아이디어 하나를 가리킨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언어를 규정하는 이런 기준이 없어지면, 결국 말과 실재는 분리된다. “단어는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한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핵심이다. 현재 포스트모더니즘 젠더 활동가의 가장 큰 관심은 인간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인체에 대한 거짓을 대중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언어를 왜곡하는 것이다.

“트랜스섹슈얼” 어린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을 준다. 그러나 “정체성”이나 “자기표현”이라는 의미가 추가될 수 있는 “젠더”가 도입되면, 이 용어는 부드러워진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어린이라는 의미는 호르몬 차단제를 사용하는 사춘기 이전의 청소년일 수도 있고, 특정 성별 규범과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는 어린이일 수도 있게 적용 범위가 넓어진다. 모호하고 이 용어로 혼란은 계속 파급되고 관련되는 사람의 숫자는 증가한다.

이 시대에 이런 언어 왜곡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당신에게 불합리한 것을 믿게 만드는 자라면 당신에게 어떤 잔학한 행위도 저지르게 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불합리한 것을 믿게 만드는 데는 언어를 왜곡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종합하면, 젠더활동가들이 ‘성전환치료’를 ‘젠더확인치료’라는 말로 돌려서 표현하는 것은 완전한 성전환이 육체적으로 불가능함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위한 언어적 술책이며, 단어의 뜻을 왜곡하여 거짓을 믿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창세기 3장에 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탄은 겉모습을 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 그 뜻을 왜곡하였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그 속이는 겉모습과 거짓말에 속았고,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자유의지로 넘어서는 타락으로 연결되었다. 그와 같은 속임과 타락은 반복적으로 성경 속에 나타났고, 오늘날 “젠더확인치료”라는 용어 속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레즈비언이며 페미니스트 학자인 줄리아 롱의 말은 의미가 있다. “‘트랜스’라는 단어에는 한 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라는 거짓말을 믿게 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모든 것이 뒤집힌다.”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