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관대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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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양심적 병역 거부’의 사유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병역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집총·군사훈련을 시키지 않는 사회복무요원을 거부하는 건 양심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아니라는 취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1, 2심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을 상고심이 파기 환송한 후 재상고심이 다시 판결을 뒤집는 바람에 화제가 됐다. 또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 최초의 판례로 남게 됐다.

우울장애 등으로 징병신체검사 결과 4급 판정을 받은 A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 ‘양심적 병역 거부’를 근거로 복무를 거부해 재판에 넘겨졌다. A씨가 주장한 요지는 국방부 산하 병무청장 관할의 사회복무요원 근무는 군 복무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1, 2심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 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이 정하는 소정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각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상고심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반대로 병역법상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라 보고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A씨가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거부한 것이 종교적 신념에 기초해 형성된, 진실한 양심에 따른 것임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재상고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그 이유는 상고심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종교적 신념의 유무를 기준으로 삼은 반면에 재상고심은 ‘양심적 병역 거부’의 사유를 집총 등 군사훈련으로 국한했기 때문이다. 사회복무요원에게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지 않는 복무의 이행을 강제하더라도 그것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A씨 측은 국방부 산하 병무청장이 사회복무요원의 복무를 직접적·구체적 지휘·감독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 거부’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재상고심은 종교적 신념 등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사회복무요원의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병역법상 정당한 병역 거부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다.

사회복무요원 복무 거부를 병역법 위반이라고 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후 그와 다른 기준을 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지 않는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복무의 이행을 강제하더라도 그것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한 셈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란 종교나 양심 등의 이유로 징집 등 병역 의무를 거부하거나 전쟁 또는 무장충돌에의 직·간접적 참여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징집을 거부하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병역 의무 위반으로 처벌받았으나 2018년에 헌재가 대체 복무제가 없는 현행 병역법을 ‘위헌’이라 하고 이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무죄를 확정하면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통념화됐다.

여태껏 소위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 거부’가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자칭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속출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7년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성소수자로 밝혀졌다. 어릴 때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는 하나 기독교인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도 아닌 사람을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인정한 건 ‘양심의 자유’에 대한 지나치게 자의적 해석이란 논란을 낳았다.

또 여호와의 증인 신도지만 교리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고 평소에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는 등 성실하게 종교생활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람을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정한 사례도 있다. 이는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아예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전유물 인양 여기는 법조계의 인식이 도마 위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헌법이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양심의 자유’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를 놓고 우리 사회에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아무리 법원이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해야 한다. 더구나 그 판단이 법의 상식과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면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복무요원을 ‘양심적 병역 거부’의 사유에서 제외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양심의 자유’에 따른 종교적 신념은 존중돼야 하나 비교적 관대한 판결 뒤에 숨어 법을 조롱하는 범법자를 가려내는 일 또한 법원이 할 일이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