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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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들어가는 말

박명수 교수 ©기독일보 DB

한국교회는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서 놀라운 성장을 하였다. 한국교회가 이 시기에 놀라운 성장을 한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 시기에 강하게 일어났던 민족복음화 운동이다. 1965년부터 일어난 민족복음화 운동은 한국교회의 역사상 매우 강력한 전도운동을 벌였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단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여기에 참여하였다. 신학과 교리에 있어서는 교파마다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복음을 전함으로서 민족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동의하였고, 여기에서 한국교회는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하면 전도를 통한 교회연합운동이며, 그 결과 한국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하였던 것이다.

1965년에 시작된 민족복음화 운동은 이 시대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이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냉전체재아래 있었고, 동서의 이념 갈등이 심했다. 1960년대 중엽부터 월맹의 침공으로 월남전이 재개되어 1970년대 중반 월남이 패망하여 공산화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박정희가 재선에 성공하여 집권하였지만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3선 개헌을 하였고, 72년에는 유신체제로 전환하였다. 아울러서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근거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제발전에 몰입했다.

그러면 이 시기의 한국교회는 어떠했는가? 1960년을 전후해서 한국교회는 WCC 가입문제로 양분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어느 분열보다도 더 큰 분열이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분열의 상처를 씻고 발전하기를 원했다. 60년대와 70년대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전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민족복음화운동이었다. 65년의 민족복음화대회, 73년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74년의 엑스플로 74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전도부흥운동이었다. 사실 60년에 WCC를 중심으로 분열된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대형집회를 통하여 연합할 수 있었고, 교리로 분열된 교회가 전도로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진보적인 기독교는 이와 같은 전도부흥운동에 소극적이었고, 산업사회의 문제점과 독재체재에 대한 투쟁에 몰입하였다. 60년대에는 이와 같은 반체제운동이 강하지 않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것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하면 처음 65년의 민족복음화운동에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참여하였지만 74년의 엑스플로대회에서는 진보진영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사실 19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민족복음화운동과 이것들이 이끌었던 대형전도운동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많지 않다. 이 시기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진보적인 시각에서 민족복음화운동을 서술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민족복음화운동은 박정희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반공운동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민족복음화운동은 본질적으로 전도부흥운동이며, 정치적인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 시기의 민족복음화운동을 일차적으로 전도부흥운동으로, 이차적으로 한국사회의 흐름과 관련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필자는 1965년부터 1974년까지의 민족복음화 운동을 다루려고 한다. 74년 이후에도 77 민족복음화대성회, 80 민족복음화대성회가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이전과 몇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첫째 74년 이후의 민족복음화운동은 순수한 한국인의 모임이며, 둘째는 전도운동의 성격보다는 부흥운동의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 운동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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