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가져올 여성과 아동인권의 종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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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미국 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차별금지법이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정소영(미국 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차별금지법은 그 본질이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법이다. 한 인간에게 자신의 자유로운 목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빅테크가 소셜 미디어의 계정만 삭제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구를 잃고, 마치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불과 1년 전, 당시 세계 최고의 권력자였던 미국의 트럼프 前 대통령도 소셜네트워크인 트위터에서 계정이 삭제되면서 그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전 세계가 목격했었다. 트럼프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고 트럼프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이 듣는 것이 옳지 않다는 빅테크의 결정에 따른 일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얼마나 쉽게 빼앗길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고, 표현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지 않으면 자유로운 다수 시민들에 의한 통치 방식인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도 유지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렇게 현대 사회는 개인의 표현과,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과학기술을 통해 일부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매우 소프트한 방식으로 통제가능한 상황인데 기업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가진 국가가 정의로운 법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혐오세력으로 몰아서 그의 사회적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파괴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혐오와 차별의 이름으로 고발하며 억압하게 될 것이며 혐오분자로 낙인찍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단언컨대 이러한 통제와 삭제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이 될 것이다. 이런 징조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파괴하고, 구제를 요청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묵살해 버리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적지향',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합법화의 문을 열다.

차별금지법 제2조 (정의)

1. "성별"이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

4. "성적지향"이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이끌릴 수 있고 친밀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맺지 않을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을 말한다.

5. "성별정체성"이란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 혹은 표현을 말하며, 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타인이 인지하는 성이 일치하거나 불일치하는 상황을 포함한다.

이러한 정의를 포함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서구 성혁명의 결정판으로써 필연적으로 수십 가지 유동적인 성별의 존재를 인정하는 트렌스젠더리즘을 포함하며 지금까지 인류가 부도덕하며 변태적이라고 정의했던 다양한 성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젠더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금기시해 왔던 동성결혼 합법화의 열쇠가 되어 지옥으로 가는 넓은 문을 열게 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다양화되었으니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에 바탕을 둔 결혼과 가족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이외의 다양한 성별과 성적지향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별과 성적지향에 따른 삶의 방식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며 살아도 아무런 사회적,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동성결혼을 비롯한 다부다처제 등과 같은 새로운 결혼과 가족제도를 우리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들의 삶의 방식이 과연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들의 삶의 방식이 옳고 그름의 문제인지, 단순히 다름이나 다양성의 문제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삶의 방식은 사회를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옳고 그름의 문제임이 증명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동성간 성행위나 다자성애 등 도덕적으로 그릇된 삶의 양식에 대해 현대 서구 사회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포용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러한 생각들이 지난 한 세기 동안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전수한 사상가들이 그 사회 속에 뿌려 둔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사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을 둔 결혼과 가족제도를 유지해 왔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한 사람의 아빠(남성)와 한 사람의 엄마(여성)가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를 낳고 기를 때 가장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류는 이러한 일부일처의 결혼과 가족제도를 바탕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왔다. 그러나 21세기의 인류는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혜로운 삶의 양식을 버리고 오히려 문명 이전의 상태인 야만으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절제도 없고, 책임도 없고, 그저 본능적 욕구만을 채우려고 했던 그 시대로 말이다.

<위 내용은 서정숙 국회의원 주최, 한국교회반동성애교단연합, 샬롬나비 주관으로 열린 '동성애에 대한 법률적 고찰과 비판'에서 발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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