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받은 축복의 시작은 용서… 용서로 축복의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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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치통닭 대표 김재곤 장로 간증
가마치통닭 대표 김재곤 장로가 간증하고 있다. ©은평뉴타운예수사랑교회 영상 캡처

가마치통닭 대표 김재곤 장로가 지난 16일(금) 예수사랑교회(담임 지성래 목사)에서 ‘용서 받은 은혜’(마 6:14~15)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전했다.

김재곤 장로는 15살 때 연탄가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사연을 전하며 “철부지 어린 나이에 세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가장이 되었는데 동생을 키울 수가 없어서 친척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저는 신문을 돌리면서 겨우 하루 연명만 하고 살았다.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 되어서 학교를 쉬고 있는데 남대문 시장에서 닭 장사를 하는 집안 형님이 같이 일하자고 하셔서 16살에 남대문 지하상가 닭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하는 닭 사업의 인연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 26살 중학교 동창의 소개로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김 장로는 세례받은 날 불렀던 찬송이 지금도 생각난다며 ‘주의 말씀 받은 그날’을 찬송했다.

김 장로는 “하나님께서 제 삶에 찾아오셨던 특별한 체험을 나누고 싶다”며 첫 번째는 50년 전 혼자 사는 단칸방에 형님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벽 4시부터 일을 했다. 16살 어린 나이에 험한 일을 하는 저를 주위의 어른들은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천대하고 멸시하고 무시했다. 심지어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또 참아야 그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다고 되뇌면서 그 힘든 세월을 견뎌냈다”고 했다.

이어 “가장 힘든 건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고 모든 일을 혼자서 결정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었다. 도저히 이대로 살다가는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다”고 했다.

그런 김 장로가 두 번째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체험한 것은 구치소에서 용서의 은혜를 체험하면서였다. 자동차 정비사 공부, 택시 운전사를 거쳐 다시 집안 형님과 닭 장사를 시작한 그는 “중동 붐이 한참 일어나던 때였다. 해외에서 돈을 벌 기회라고 생각해 대우건설에 덤프트럭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앞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희망이 보였다. 중동에 가서 목돈을 마련해 오면 결혼도 하고 전세방도 얻고 개인택시도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출국을 보름 앞두고 이 작은 꿈이 처절하게 무너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해외 출국을 보름 앞둔 새벽, 닭 배송을 하는데 언덕 꼭대기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아이들 둘이 제 앞을 지나 옆에 대기 중인 택시를 들이받았다. 저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바빠서 그냥 갔는데 뺑소니라는 누명을 쓰고 유치장에 갇히게 됐다. 법 지식도 없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어서 구치소에서 40일을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김 장로는 “요셉도 그랬지만 제게도 특별한 하나님의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당시 믿음이 없었던 저는 하나님께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기도를 어떻게 할지도 몰랐다. 가만히 돌아보니까 너무 억울했다. 그동안도 너무 힘들게 살아왔는데 여기까지가 내 인생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나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감방 한구석에 있는 작은 포켓 성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태복음 6장 14~15절 용서에 대해 읽게 되었다. 그때는 믿음이 없었기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용서가 되지 않다가 로마서 12장 19~21절 말씀을 읽고서야 이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어졌다. 하나님의 용서가 제게 명령으로 다가와서 용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때 그 사건 이후로 제 인생에 한 번도 용서 못 할 원수를 가져본 적이 없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최종 재판을 받았다. 남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최종 판결로 집행유예를 받고 다음 날 풀려났다. 그때가 6월이었는데 길가에 가로수가 춤을 추듯 새롭게 보였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안함을 제 마음에 가득 채워주셨다. 운전면허증도 취소되고 해외에 가는 것도 무산되고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을 시켜주시면 하겠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수로 닭 배달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그해 가을 거래처로부터 믿음이 좋은 한 자매를 소개받고 이듬해 봄 결혼식을 올렸다. 아마도 용서의 축복은 감옥 안에서 새로운 평안의 자유함과 출소 후에 결혼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장로는 “다음 해 봄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첫 딸을 주셨다. 그런데 첫 딸이 6개월쯤 악성 간질에 뇌성마비로 받았다. 2년 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딸을 통해서 저를 다시 한번 만나주셨다”며 세 번째 체험을 간증했다.

그는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말씀에 은혜 받지 못한 초신자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교회에 다녀도 여전히 세상 것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중병에 걸리고 난 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 성수를 온전히 하기로 하나님께 작정하고 거래처를 찾아가 일요일에 쉬고 토요일에 이틀 치를 준비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주일이 1.5배 장사가 더 잘 됐기에 쉽지 않은 일인데 50개 거래처 중에서 딱 두 곳만 끊어졌다. 그리고 거래처가 엄청나게 늘기 시작했다. 주일성수하면서 하나님이 제게 큰 복을 주셨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주일성수를 통해서 큰 복음을 받았으면서도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주초를 했다. 그런 중에 교회 집사님 소개로 기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금식기도를 하는데 제 안에 있는 죄악의 찌꺼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기도 받는데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줄줄 흘렀다. 힘들고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 슬픈 눈물이 아니라 시원한 눈물, 기분 좋은 눈물이었다. 저는 그때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신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담배도 다 끊고 노름하는 친구도 만날 일도 없게 되고 변화와 순종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는 “딸아이도 기도원에서 기도를 받았는데 눈에 초점을 맞추고 몸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딸아이를 통해서 살아계신 걸 직접 보게 해주셨다. 기도원에서 많은 은혜를 받고 난 이후 저는 온전한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교회 식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교회 봉사일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제가 주님의 일을 하니까 주님께서 제 일을 해주심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업도 성장하고 5년 동안 누워서 살던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발목에 살이 붙고 힘을 얻어서 건강하게 되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저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셨고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니 제가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고 교회를 떠날 수 없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오래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접점이 있어야 뜨거워질 수 있다”고 했다.

김 장로는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연단의 은혜로 또다시 찾아오셨다. 성도들에게 고난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임을 배우게 하셨다. 고난을 통해서 주님은 저에게 겸손도 배우게 하셨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양계업 수익으로 선교사역을 후원하려고 했었다. 땅을 사고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는데 반대에 부딪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위기였다. 너무 절박했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어서 금식하며 기도했다. 하나님께선 기도하는 중에 저의 모든 자존심을 다 내려놓게 하셨다. 그동안 내려놓지 못한 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그 이후에도 가까운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그렇게 일 년 내내 기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그때의 고난은 다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제 삶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나를 위해서 쉬어본 적 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너무 허탈했다. 그 당시 부채가 29억, 수입 없이 매월 이자만 천만 원 가까이 되니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로마서 13장 8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다“고 했다.

이어 “이때 저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두 단어를 생각나게 하셨다. 하나는 코람데오, 또 한 단어는 성령충만이다. 이 두 단어를 두 기둥처럼 제 삶에 세워놓고 이 말씀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뎠다. 저는 코람데오, 성령충만을 외치면서 기도하면 반드시 새 길을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간구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전혀 제가 예상치 못한 길을 예비하고 계셨다”고 했다.

그는 “그해 말에 동종업계 친구로부터 같이 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왔다. 이것이 하나님 기도 응답의 시작이었다. 친구의 공장에 영업 상무로 취직하게 됐고, 9개월 후에는 대표이사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저는 그 직장을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셨다. 정치에 문외한이던 친구가 갑자기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하나님은 제게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사업을 만들어 주셨다. 그때 이건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것과 마지막 때에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을 거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사업 첫해인데도 불구하고 연 매출 500억을 했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를 드려서 교회가 없는 작은 고향 마을에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다. 하나님께 감사해서 시편 116편 12절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여호와께 보답할까 하는 마음으로 사업 첫해부터 농촌 미자립교회, 해외선교사님을 후원하고 어렵고 힘든 이웃에 나눔을 실천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회사의 주인 되시는 믿음의 기업으로 세워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부족한 종의 사업장을 쓰시려고 사명을 주신 줄로 믿는다”고 했다.

김 장로는 “50년 전 15살에 고아가 된 제가 지금은 연 매출이 1,600억이 넘는 곳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제가 받은 축복의 시작은 마태복음에 쓰인 용서였다. 용서로 축복의 길이 열렸다.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서 통할 수 없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나 예배보다 급한 일이 있다. 그것은 형제와 화목하고 용서하는 일이다. 용서는 모든 닫힌 관계를 열어주는 통로이다. 예배보다 용서가 먼저다. 용서는 깨닫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다. 실수한 상대가 먼저 찾아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것이다. 제가 빈손으로 용서의 축복을 받았다면 여러분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