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구원의 네 가지 질문과 서정(1)

오피니언·칼럼
기고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내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게 눈 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6~7)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사 49:1)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잇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사 51:2)

1. 성경과 설교의 목적

성경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구원을 가장 정확히 설명한 신학을 일러 ‘칼빈주의’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칼빈주의의 구원론을 가장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1626년부터 독립적으로 네덜란드 자유교회를 세우고 칼빈주의 계열과 분리되어 오늘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후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뉴잉글랜드 교회에 큰 영향을 주어서 훗날 침례교회와 존 웨슬리의 신학을 출발점으로 둔 감리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특별히 존 웨슬리는 어릴 때부터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신봉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당연히 칼빈주의에 대한 반감이 컸습니다. 웨슬리는 매우 냉혹하게 칼빈주의를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칼빈주의의 예정론 교리가 사탄이 최근 50년간 만든 교리 중 가장 사악한 교리 중 하나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추종하는 세력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의 제임스 패커 교수는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아직도 거론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구원론에 있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어느 한 군데 속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Arminianisms, 1985).

어쨌든 우리 선조들은 1619년에 도르트총회를 열고 일명 ‘튤립’(TULIP)이라는 칼빈주의 5대교리를 만들어 아르미니우스주의가 비성경적 주장임을 공고히 했습니다.(그렉 포스트라는 신학자는 튤립 대신에 ‘웁시’(WUPSI)라는 용어가 더 적당하다고 합니다). 이후 시대마다 훌륭한 칼빈주의자들은 5대 교리를 바탕으로 한 구원론을 열심히 설교하고 가르쳤습니다. 설교의 황태자였던 찰스 스펄전 목사는 “이 교리를 설교하지 않는 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대한 제대로 된 설교는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칼빈주의는 복음의 별칭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외 찰스 핫지,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드, 존 번연, 존 폭스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만큼 수많은 칼빈주의자들이 5대 교리를 정호가히 당당하게 설교했습니다. 그중 가장 가까운 시기에 사셨던 성경강해자인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칼빈주의자였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10장을 강해하면서 “칼빈주의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준 교리이며 그것을 바울이 성경에 다시금 체계화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칼빈주의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교리 내용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내용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오늘도 우리는 성경적 구원론을 설교하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과 설교의 목적은 오직 구원에 있음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설교이든 하나님의 구원을 외쳐야 합니다. 그것도 어설픈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확실한 주권적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의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임을 분명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를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깨닫게 하시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두 단어로 축약하면 앞의 것은 ’구‘원’이고 뒤의 것은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자의 설교의 내용을 요약하면 바로 ‘구원과 성화’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기록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은 문학과 철학을 위한 것도 아니며, 과학과 처세술과 각양 인문학적 목적을 이루기 위함도 아닙니다. 성경은 오로지 지옥에 가야 할 인생의 구원하고 구원 받은 인생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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