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상 회복의 시간, 누군가는 머리 숙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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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4월 18일부로 전면 해제됐다. 시행된 지 2년 1개월 만이다. 이로써 수용 인원의 70%까지만 허용되던 종교시설 인원 제한도 사라지게 됐다.

예배에 내려졌던 방역 통제가 풀리고 멈췄던 일상이 되살아나게 된 건 참으로 다행스럽다. 다중 이용시설의 인원 및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고 행사와 종교시설 인원 제한이 사라진 건 분명 반길 일인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좋아하기엔 지난 2년여 고통과 희생의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2년여 만에 방역 통제가 풀리기까지 정부의 고충을 한두 마디로 정리하기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48번이나 바뀐 ‘거리두기’가 말해주듯 그 모든 것이 ‘통제’ 아래 있었다는 건 반드시 되짚어야 할 문제다. 이만큼이라도 우리 사회를 지킨 건 의료진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고 덕이지 정부의 공으로 돌리기엔 무리라는 말이다.

처음 겪는 바이러스 감염 공포에 정부로서도 어느 정도 강력한 통제가 필요했을 것이란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급속히 퍼질 때 전 세계가 제일 먼저 중국인 입국 통제에 들어간 반면,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며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국내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다중이용시설과 종교시설만 들쑤셨다. 정부의 ‘선택적 방역’이 그 후 얼마나 큰 희생을 초래했는지는 지난 2년여 시간이 말해준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용어가 정부 당국자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게 2020년 2월 29일이다. 그때는 “외출이나 밀접 접촉을 자제해달라”는 당부와 권고 사항 수준이었다. 그러다 대구 신천지집단에서 대거 확진자가 나오자 그 용어의 성격이 강제성을 띤 법적 조치로 바뀌었다. 문제는 어디서든 확진자가 나오면 조이고 잠잠해지면 푸는 식의 기계적 통제가 아니라 과학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정부의 수없이 바뀌는 통제조치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는 데 있다.

이랬던 정부가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시점에 서둘러 ‘거리두기’ 전면 해제카드를 꺼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드러난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에 62만 명까지 치솟았던 하루 확진자가 일주일 새 15만 명에서 10만 명 수준으로 급감하자 오미크론 대유행의 정점이 지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60만 명에서 10만 명 이하로 확진자가 준 건 수치상 엄청난 변화다. 그러나 수백 수천 명씩 확진자가 나올 때도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통제를 풀지 않던 정부가 매일 10만 명씩이나 확진자가 나오는데 전면 해제라니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다. 오미크론 변이가 사람에 따라 증상이 가볍다고는 하나 매일 수백 명씩 사망자가 나오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사실 정부는 꽤 오래전부터 ‘거리두기’ 해제를 염두에 두고 그 시기를 저울질해 온 것으로 보인다. 더는 정부가 모든 걸 감당하기 버겁다고 판단한 게 그 첫 번째 이유다. 확진자가 폭증하는데 거꾸로 ‘방역패스’를 해제하고 ‘거리두기’를 차츰 완화한 게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결국, 봉쇄와 통제의 한계를 정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더라도 모든 걸 한꺼번에 푸는 건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오는 25일부터 1급 감염병인 코로나19를 2급 감염병으로 내려 계절병, 풍토병으로 취급하고 다음 달 말부터는 확진자 격리 의무까지 폐지하겠다는 건데 언제든 대유행으로 확산할 위험성이 있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이런 기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견해와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WHO는 14일 “코로나19는 여전히 매우 불안정하고 대유행을 일으킬 여력이 있다”면서 지금까지 높은 수준으로 전파되고 엄청난 사망자와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코로나19를 ‘엔데믹(풍토병)’ 취급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런 우려와 지적에도 정부가 서둘러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를 단행하게 된 배경에는 정권 이양기라는 정치적 동기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정권을 마감하는 시점에 코로나19 방역의 마침표를 찍고 싶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통제 위주의 정치 방역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온 이상 온 국민이 오매불망 기다려온 ‘일상 회복’의 출발을 알리는 호기를 새 정부에 넘기기 싫었을 수도 있다.

2년 1개월 만에 이루어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건 분명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모든 국민이 잘 참고 견뎌온 보상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정권 이양기에 서둘러 발표한 정치적 의도가 무얼 의미하든 그것이 치적이 될지, 잘못이 될지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그래도 코로나19 대응만큼은 잘하지 않았느냐고 국민에게 묻는다면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정치 방역’이란 비판까지 낳은 과도한 통제가 과연 적법하고 적절했는가 하는 거다. 이는 선거 때마다 등장한 피해 손실보상금 몇 푼으로 덮을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겪은 수모는 그 이상이다. 방역 당국자조차 “대면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라고 하면서 지난 2년여 예배를 통제하고 결과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훼손한 행위는 아무리 통치행위라 해도 그냥 묵과하기 어렵다. 이제 와서 ‘일상 회복’을 정치적으로 포장하고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민감정이란 게 있다.

48번이나 바뀐 방역정책을 견딘 건 국민 개개인이지 정부가 아니다. 정권 이양기란 어쩌면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국민 앞에 진솔하게 머리 숙일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코로나19로 사망한 2만1천2백여 국민과 그 유족 앞에서만이라도 겸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