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줄고·재학생 떠나고… 학생·학교 피해, 책임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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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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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사회, 정부 발표 당혹...만시지탄"

탈원전 정책을 펴던 문재인 정부가 원전을 주력 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 입장을 내놓자 현장에서는 기존 정책 기조와 결이 다르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 학생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든 대학에서는 만시지탄의 목소리도 있다.

29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점검회의를 열고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며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의 정상가동 점검을 주문했다.

탈원전 정책 기조를 이어오던 문 대통령이 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자 현장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이미 학생수가 줄어든 대학에서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마냥 반기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윤종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발표한 것을 보면 전력원으로 향후 60년 이상은 지속적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당혹스럽다. 교수 사회에서도 다들 이런 반응"이라며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지속해서 말할 때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던 정부였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카이스트는 2학년 때 전공 학과를 선정하는데, 80명 되던 학생이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선언 이후로 매년 줄어들어 현재 25명이다. 이번에 입학한 학생은 3명"이라며 "탈원전 정책 속 학생들과 학교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이스트에는 원자력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대부분인데, 그런 학생이 줄어든 것"이라며 "베이비붐 세대 선배들이 이제 은퇴할 시기인데 그걸 채울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안전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 기조를 강조한 이래 유관 학과 신입생 수는 감소세를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상반기에는 카이스트 학생 가운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를 선택한 인원이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전 인재 양성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상황은 반전을 맞지 못한 모습이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원자력공학과 등 원자력과 관련이 있는 학과를 둔 17개 대학의 2020년 3월 기준 재학생(학사·석사·박사)은 219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6.8%(160명) 감소한 수치다. 2017년 재학생 수는 2777명, 2018년 재학생 수는 2527명이다.

입학생 감소도 주목된다. 2017년 817명이던 원자력 관련 학과 입학생은 2018년 707명, 2019년 678명, 2020년 524명으로 꾸준히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김진원 조선대학교 원자력공학과장은 "탈원전 5년 동안 학교가 가장 치명상을 입었다. 학교에서 양질의 학생들을 육성해서 배출하지 않으면 곧 산업에도 타격이 가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원자력을 안 하겠다고 하는데 어느 학생이 원자력을 공부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발언을 바꾸는 분위기지만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며 "원전이 필요하다고 말은 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제시된 게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탈원전 정책 기조가 이어지는 동안 동기나 후배들의 전과, 줄어든 신입생 수를 확인한 관련 학과 재학생들도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 중인 조모(32)씨는 "전공 선택할 때는 미래가 밝고 나라의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사양 산업이 되어 가는 걸 보면서 절망감이 들었다"며 "지금 이렇게 갑자기 말 바꾸는 거 보면 화가 난다. 우리가 경고했던 부분이 문제가 되니까 급히 말 바꾸는 게 어이가 없다"고 했다.

그는 "탈원전을 가장 강력하게 드라이브 걸었던 독일도 원전을 계속 쓰는 걸 보면 결국 원자력이 중요한 부분인데 신중하게 정책을 정했으면 좋겠다"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뒤집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문가로 이뤄진 위원회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원전은 10년을 내다보고 인허가 건설을 들어가야 하는데 5년 임기 대통령이 결정할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또 다른 대학에서 원자력 공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28)씨는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이후 입학생 수가 현저히 줄었다"며 "주변에서는 전기과나 여차하면 기계과로 전과하는 경우가 있었고, 나중에는 다른 학과로 전과하기 위해 원자력공학과로 입학하는 사례도 있었다. 내가 입학할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문이 더 좁아졌다고도 했다. 연구직 공채 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전환형 인턴직 역시 줄었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정부가 일부 여론만 보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라며 "예전에는 국가 에너지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탈원전 정책 기간 동안 그런 자긍심이 남아있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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