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구약학회, ‘남북왕조시대의 언어와 종교’ 주제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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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강승일 박사, 발제
유윤종 박사 ©유튜브 영상 캡처

한국구약학회(김회권 회장)가 1일 오후 2시 ‘남북왕조시대의 언어와 종교’라는 주제로 제117차 한국구약학회 추계학술대회를 온라인 줌으로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는 유윤종 박사(평택대)가 ‘북이스라엘 히브리어 연구의 논쟁점들’, 강승일 박사(연세대)가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20:4): 야웨 신앙의 반형상주의’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유 박사는 “북이스라엘 히브리어 연구의 주요 쟁점에는 수정주의자들의 비판을 들 수 있다”며 “이러한 비판에 대해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먼저는 ‘북이스라엘 히브리어 연구의 성과에 대한 수정주의자의 비판은 일관적이며 정당한가’이며 둘째로 ‘수정주의자의 비판이 북이스라엘 히브리어의 실체를 부정할 정도로 치명적인가’이다”고 했다.

이어 “방법론에 있어서 ‘분포’에 관한 비판 가운데 가장 널리 지적된 사항은 북이스라엘 히브리어로 된 본문의 선정 방식이 순환논법이라는 점이다. 순환논법의 약점은 전제에서 출발하므로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전제에서 출발하는 결론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 본문이 북이스라엘 히브리어를 반영하는 본문인가에 대해, 패트-엘(Pat-El)은 확신할 수 있는 본문은 아무것도 없다며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며 “반면 슈니더윈드(Schniederwind)와 시반은 북이스라엘 히브리어로 확신할 수 있는 본문은 호세아와 북이스라엘 지파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패트-엘은 구약성서는 훈련받은 서기관이 일관성을 가지고 기록한 문어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제까지 다수의 학자가 주장해 온 북이스라엘 히브리어의 실체 자체를 부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녀 또한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녀는 일부의 본문에 비표준 히브리어가 나오지만, 그것을 방언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그 정확한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며 “슈니더윈드와 시반은 열왕기에 나타난 히브리어의 특이함이 엘리야-엘리샤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주목하면서 북이스라엘 히브리어가 아니라 구어체라고 주장한다. 영(Young)은 열왕기의 언어적 특이함을 북이스라엘 히브리어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외국인임을 나타내는 문학적 기법이며, 표준 히브리어의 환경 내에서 나타나 체계적인 차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는 “수정주의자들은 북이스라엘 히브리어의 본문의 범위를 부정하거나(패트-엘), 매우 좁게 설정한(슈니더윈드와 시반) 다음 좁은 틀 내에서 재해석한 후 북이스라엘 히브리어의 실체에 부정적인 관점을 주장한다”고 했다.

이어 “구약성서의 본문이 잘 훈련된 서기관이 기록한 문어체로 기록되었다는 패트-엘의 전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구약성서의 본문 형성에 관하여 우리가 100% 알 수 있는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저자와 형성연대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본문은 전무하다. 구약성서의 본문은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이 기록한 다음, 수집 및 편집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형성된 선집(anthology)이라고 생각한다. 수집 및 편집의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은 남 유다의 서기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잠 25:1), 본문 내의 변이를 적극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 전승 과정은 마소라의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커티브(K)와 케레(Q)는 마소라들이 편집 작업 중 전수한 텍스트를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이스라엘 히브리어 연구성과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은 주목할 점도 있지만, 많은 경우 충분하지 않은 이해와 전제의 부인으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비판의 정당성은 매우 약하여, 북이스라엘 히브리어의 실체를 부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한다”고 했다.

아울러 “공시적 연구방법으로서의 북이스라엘 히브리어 연구는 역사적인 연구방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언어적 차이는 모든 언어에 존재한다”며 “하지만 히브리어의 변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발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사해사본에도 고대 히브리어의 특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종교적 언어일수록 변화에 대하여 보수적이다. 표준 히브리어에서 벗어난 변이는 매우 다양한 구성요소를 지닌다.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두 번째 발제자인 강승일 박사는 “고대 이스라엘 주변 세계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신상 중심의 종교였다”며 “이스라엘의 야훼 종교도 초기에는 주변 세계와 마찬가지로 신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신상을 먹이고 입히고 것이 어느 정도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는 불확실하다. 성서의 기록을 근거로 보면, 신상을
돌보는 것이 핵심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제의와 달리,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는 동물의 제사가 신전 제의의 주를 이루었던 듯하다”고 했다.

이어 “성경 시대 이스라엘의 종교(야훼주의 신앙을 포함한)는 분명 aniconic이 아닌, iconic 종교였다”며 “성경의 기록들도 이스라엘의 종교에는 공식종교(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산당에 있었던 아세라, 유다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 느후스단, 태양상)와 민간종교(삿17장, 드라빔)에서 모두 각종 성상들이 존재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으로 종교가 다신교에서 단일신교로, 단일신교에서 유일신교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이는 반드시 사실은 아니며,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사고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비록,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서 신상의 종교에서 무형상주의로, 무형상주의에서 반형상주의로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단계적인 발전이 항상 예상되는 것은 아니”라며 “동시대에 형상의 종교와 무형상주의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상의 종교가 무형상주의로 발전한 것이 저급한 종교에서 고차원적 종교로 발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무형상주의는 어떤 특정한 요소 한 가지의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주변 세계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던 사상, 즉 추상적 이미지나 상징물로 신인동형론적 신상이나 그림을 대신하는 경향의 하나로 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며 “특히, 비록 낮은 비율이긴 하지만, 기원전 7~6세기로 가면서 유다뿐 아니라, 모압, 아람, 암몬 등의 인장들에서도 형상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무형상주의가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 당시의 레반트 지역의 전반적인 흐름이었음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강 박사는 “고대근동 세계에서 반형상주의, 즉 형상을 금지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문서화된 사례는 구약성서 이외에서는 찾을 수 없다.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반형상주의(programmaticaniconism)는 신명기 신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신상 금지를 말하는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들은 야훼의 신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들”이라고 했다.

아울러 “ 인간의 종교적 신심은 어떠한 형태로든 신의 현존을 확보하여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채 신을 떠올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천주교는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두고 있고, 개신교도 여전히 십자가라는 상징물을 통하여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20:29)고 말씀하셨을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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