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울과 은혜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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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바울과 은혜의 능력』

1. Paul & Gift

벌써 5년이 지난, 학부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두던 시절 유독 많이 들었던 이름이 있다. 하나는 루이스 마틴(J. Louis Martyn)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책의 저자 존 바클레이(John M. G. Barclay)다. 그의 저작 ‘paul & gift’(바울과 선물, 새물결플러스 역간, 2019년)가 정말 대작이니 무조건 읽어봐야 한다는 소리를 그 시절의 나는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대관절 그가 누구인데 동기나 선배, 타 학교의 동료 신학생을 막론하고 일단 읽어보라는 소리를 해대는가? 반쯤 불만을 갖고 읽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나는 여지없이 그를 찬사하는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바울과 선물’을 펴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학문적인 방법론부터 시작하여 1세기 유다이즘 신학의 지형도와 바울의 위치, 바울의 편지가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신학은 무엇인지 등등 각각 심도 있게 다뤄야할 주제들이 많다. 그러나 나를 사로잡은 주제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울신학의 ‘현대성’ 즉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바클레이의 실천을 향한 지향은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에 정초해 있다. ‘아비투스’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자본에 구애되어 있는 인간 안에서 특별히 각 사회 내의 여러 환경을 통해 구축된 습관들을 말한다. 이는 앞서 말한 조건 속에서 강력하게 재생산되며, 바클레이의 독법으로는 ‘구조를 구조화’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습관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실천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의 계급과 구조를 행동으로 드러내게 한다. 바클레이는 바울의 편지들을 이런 아비투스와 연결시키면서, 단지 주석적인 함의의 바울신학을 미약하나마 실천적인 거대이론으로 도약시키려 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 ‘바울과 은혜의 능력’(감은사)은 특히 그의 앞선 책인 ‘바울과 선물’의 이러한 실천적인 부분의 발전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에 따라 나는 이 글을 통해 먼저 바클레이의 ‘바울과 은혜의 능력’ 속 바울서신 주해를 요약, 정리한 뒤, 그의 주해와 신학이 현대 한국 개신교회의 바울해석에 어떤 도전을 줄 것인지를 다루고, 나아가 바울을 통한 바클레이의 실천이론이 지니는 함의들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특히 바클레이는 자신의 바울 주해를 전개해감에 있어 여타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어색한 전제 이론과 방법론을 사용하므로, 이러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우리가 바클레이의 책을 통해 고민해볼 수 있는 목회적인 지점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겠다.

2. 그리스도 안에서

김선용은 이 책에서 바클레이가 스스로 자신의 바울신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고 평한다.(11-12쪽)

은혜는 사전 조건이 없고 가치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값없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보답에 대한 기대 없이, 반응에 대한 희망 없이, 아무런 부대조건 없이 주어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선물은 한 편으로는(가치나 자격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의미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반응에 대한 기대 없이 주어지는 의미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확인했듯이, 그리스도-선물은 강한 기대를 동반하는데, 이는 그 선물이 변혁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아를 새롭게 빚어내고 신자들의 공동체를 재창조한다. 그러므로 인간적 실천 속에서 나타나는 이 신적 선물의 사회적 효과는 은혜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다.(281쪽)

바클레이는 여기서 바울의 ‘은혜’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여러 복합적인 개념들과 뉘앙스들을 칼같이 분해하고 실제 바울이 의도한 개념들만 고르려고 노력한다. 그가 보기에 바울은 “행위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은혜(롬 4:1-5) 및 선물에 의해 변화된 사람들이 심판의 날에 선을 행하는 것(롬 2:10)으로 약술되는 무언가를 보여줄 것에 대한 기대, 이 둘을 동시에 강조”(205쪽)하고 있다. 바클레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인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은혜를 말하며, 이 개념을 더욱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바울이 말하는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은혜’는 받는 이의 자격 여부를 따지지는 않지만, 은혜를 받은 그 수여자에게서 명백한 변화를 기대한다. 이러한 세심하고 명확한 분해는 바울신학의 실천적 함의의 토대가 된다.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은혜가 기대하는 ‘무언가’를 어떻게 설명할까? 바클레이에 의하면 그 기대는 인간 생활의 전면적인 변화다. 바클레이가 주해하기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그리스도 그 자체’로 주어진다. 은혜로 주어진 것은 그리스도 자신,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동화시키고, 참여시키는 즉 수여자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이다.(275쪽) 그리스도와 함께하게 된 신자는 그로부터 생명을 받아 전면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말했던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바클레이가 바울을 통해서 어떻게 다루기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아비투스는 강력하게 재생산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이 보여주는 행동이 어떻게 구조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바클레이는 바울서신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아비투스의 변화 즉 ‘그리스도로 옷 입는’(롬 13:14; 참조, 갈3:27, 222쪽)는 사람을 바울을 통해 찾아낸다. 그에게 있어 은혜이신 그리스도는 수여자들의 아비투스를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바꾸는 강력한 생명력이다.

3. 한국 교회와 바클레이

바클레이가 말하는 바울의 은혜신학은 “조건 없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값없는 선물이나, 명백한 변화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값없지 않은 선물”이 그 요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혼란을 맞이하게 되는데, 많은 경우에서 우리 개신교의 강단설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다’고 표현할 때 여러 가지 뉘앙스를 한 단어에 뭉개서 표현하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값없는 은혜’이라는 단어에서 수여자의 자격 여부와 상관 없이 주어지는 은혜와 수여자의 보답 불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린다. 이 두 가지 뉘앙스는 교리언어로 고착화 돼, 우리에게 심판하는 하나님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거나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책임 부분에서 의무감을 느끼면 안 된다는 강박을 야기하였다. 특히 이러한 뉘앙스의 혼동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책임의 부분을 논의할 때 우리들로 하여금 바울이 언급한 행위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빠뜨려왔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에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 ‘자만의 상징’이었다.

이는 결국 지난 10년간 한국 교회를 뜨겁게 달군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책임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적폐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설령 그것이 행위로 인한 자력구원이 될까봐, 공동체를 향한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지침들을 구체화시키기 꺼려 왔으며, 이는 한국 교회로 하여금 점점 자기 내적인 선교와 회심에 만족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점차 공동체 문제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으로 번져 갔고,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최근 여러 가지 공동체 문제에서 모두 실패했다.

바클레이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묶은 문제에 해독작용을 한다. 바클레이는 적어도 자격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한국 교회의 은혜 해석에 동의하면서도, 주어진 은혜는 인간을 변혁하고 그 아비투스까지 재형성한다는 점을 말하며 이러한 문제를 교정하려 한다.(309쪽) 은혜는 수여자가 아무 보답도 하지 않음을 가정하지 않는다. 만약에 사람의 근간부터 뒤바꾸는 신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애초에 아무 은혜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설령 그것이 더디더라도 끊임없이 ‘그리스도’로써 새로운 아비투스를 형성해 나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러도록 우리를 강요한다.(고후 5:14)

4. 바클레이의 실천이론

결국 바클레이에게 있어 바울의 은혜신학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키워드는 ‘자격없음’, ‘그리스도 안에서’, ‘변혁’이다. 계속해서 언급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은혜는 수여자의 자격여부를 따지지 않지만, 수여자와의 연합과 관계 맺음을 통해 그가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전면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신적인 선물이다. 이는 은혜 개념에 대한 우리의 오해, 즉 하나님은 은혜를 받은 수여자에게 어떤 변화나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도전하며 우리가 그동안 회피해왔던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나아가 바클레이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결국 바클레이는 은혜로 인한 수여자의 변화는 어떤 형태로 이뤄진다고 말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아비투스는 어떤 행동으로 보여지는가? 바울의 은혜 신학은 어떤 실천적, 윤리적 함의를 갖는가? 바클레이는 이에 대해 세가지 실천을 말한다.(331쪽) 첫째는 상속된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공동체를 준비시키는 것, 둘째는 개인의 자존감 위기를 해결하는 것, 마지막으로 상호적인 베풂의 실천을 조성하는 것.

바클레이의 실천이론에서 첫 번째는 도전하는 공동체다. 교회는 특별히 익숙한 관습과 잘못된 관성에 늘 도전해야 한다. 교회는 시간이 지나며 자리를 잡아갈수록 동일한 문화수준의 집단으로 고착화 될 위험에 처한다. 한 개교회의 결속력이 강해질수록 그들은 같은 공동체 내에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며, 이는 상상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기 쉽다. 공동체 문화적 관성은 해당 공동체로 하여금 다양함을 잃어버리게 하며 사회적으로 고이게 한다.

그러나 바클레이는 은혜신학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갈 3:28)임을 말하며, 우리와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절하고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새 사람은 민족성, 인종, 계급, 성별 등 타인을 판단하는 모든 가치 표준에서 자유로워져 그리스도라는 우월한 가치(빌 3:8)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바클레이의 두 번째 실천이론은 자존감의 위기를 해결하고 극복해나가는 것이다. 아비투스는 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명백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이러한 차이가 폭력을 만들기도 한다. 하위계급의 아비투스를 가진 이가 조금 더 상위의 아비투스를 가진 사회에 편입 되었을 때 매우 큰 위기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부르디외는 이를 상징폭력으로 부르며, 바클레이가 보기에 현대사회 속 크고 작은 상징폭력 속에 노출된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 하여금 언제나 심판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바울의 은혜신학의 가치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판단된다. 도덕성, 부와 명예, 그 외에 모든 상징자본을 통틀어서 어떤 가치도 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러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바클레이가 거듭 강조했든 하나님의 은혜는 가치 없는 자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와 관계를 맺는다.(340쪽) 그러나 이를 납득할 수는 있어도 한 인간이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바클레이는 바울의 사회적 권면을 찾아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롬 12:10). 하나님의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은혜는 그것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그것을 깨닫도록, 인간과 인간이 받은 은혜를 나누게 한다. 나눠지는 은혜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임을 상대방을 통해서 깨닫게 한다.

마지막 개념은 바클레이의 실천 이론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바클레이는 사회에서 이뤄지는 나눔과 호혜가 때로는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경우를 포착한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방식의 적선 같은 경우, 은혜를 나누는 쪽에게 나누어 받는 쪽이 종속되는 효과를 낳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바클레이는 바울의 선교에서 이뤄진 공동체들은 언제나 상호 호혜를 베푸는 역동적인 공동체라는 사실에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한다.

5.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책임

바클레이의 실천이론들을 찬찬히 뜯어보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바울의 은혜신학 속에서 뽑아내는 실천적 함의들은 모두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회적인 윤리를 말한다. 그는 하나의 공동체가 문화적으로 고착화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바울의 은혜신학이 말하는 하나님 은혜의 조건없음과 차별없음을 통해 한 공동체가 늘 다양한 구성원들이 섞여 하나를 이뤄야 함을 말한다. 또한 조건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를 새로 부여 받았음을, 공동체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함으로써, 상대방이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은혜 공동체의 책임임을 그는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바클레이는 바울 공동체의 역동성을 근거로 한 사회 속 호혜가 절대로 한 방향으로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조금 복잡한 윤리를 교회 속에 세우려 한다.

지난 2010년대는 교회의 사회적, 윤리적 책임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던 시기다. 교회는 그동안 행위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실천해야 할 여러 책임들을 지키지 못했고, 늘 윤리적으로 실패해왔다. 그러한 실패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교회는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 책 ‘바울과 은혜의 능력’은 그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들의 강박을 해독할 수 있는 책이다. 한국교회는 언제나 당면한 문제들을 성경 앞에서 해결해온 교회다. 우리가 직면한 비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성경 앞에 서야만 한다.

권우진 목회자후보생(강남교회), TGC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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