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이탈리아 차별금지법안에 외교적 항의 제기

프란치스코 교황. ©뉴시스

교황청이 이탈리아에서 발의를 고려 중인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과 혐오 발언을 제재하는 법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외교적인 항의를 제기했다고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보도했다.

이 매체는 AG 프랑스 프레스(France Press)를 인용해 “현재 이탈리아 의회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잔’(Zan) 법 초안이 교황청의 항의를 받았다”고 했다.

교황청은 서한에서 “이 법안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이를 표현할 자유를 제한하여, 교황청과 이탈리아 양자 간 콩코드 협정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마테오 브루니(Matteo Bruni) 교황청 대변인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청 서한이 지난 목요일 이탈리아 대사에게 비공식적으로 전달됐다”고 밝혔다.

다른 현지 매체는 “이는 양국 관계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 서한은 교황청의 실질적 외무장관인 폴 리처드 갤러거(Paul Richard Gallagher) 대주교가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가톨릭 신자들이 LGBT 문제와 관련된 종교적 견해를 표명한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5월 17일이 동성애 및 트랜스젠더 혐오에 반대하는 국경일로 제안된 가운데, 교황청은 이 서한에서 가톨릭 학교들도 이를 예외 없이 적용받는 데 대한 반대 입장도 밝혔다. 또 이 법안은 교황청의 ‘조직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안 지지자들은 “교황청의 입장은 빗나간 것으로, 이탈리아의 정치에 간섭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했다.

법안을 지지하는 동성애자이자 중도좌파인 알렉사드로 잔(Alessandro Zan)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법의 내용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모든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며 “주권 국회의 특권에 대한 외국의 간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 연합(Union of Atheists and Agnostic Rationalists)의 로베르토 그렌데네(Roberto Grendene) 사무총장은 AP통신에 낸 성명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압박에 저항할 뿐 아니라 이 전례 없는 국정 간섭을 비판할 정치적·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마테오 살비니(Matteo Salvini) 전 부총리와 우파인 레가 노르드(Lega Nord) 당 대표 등 잔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법은 학교 내 LGBT 선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살비니 전 부총리는 “이 법은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이 우리 사회의 핵심이라고 믿는 이들을 검열하고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CP는 “가톨릭은 교리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2016년 이탈리아 의회가 동성결합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반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며 “잔 법은 상원에서 역풍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이 법안을 개정하려면 지난해 11월 법안을 통과시킨 하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 성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종종 언급하기도 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크룩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해 한 신부와의 인터뷰에서 “젠더 이론’(gender theory)은 세상의 악이 보이는 영역이다. 이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뿌리부터 파괴하려는’ 위험한 목표”라고 비판했다.

또 “다양성, 구별. 이는 모든 것을 균일하고 중립적으로 만든다. 이는 차이, 하나님의 창조,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하나님께서는 죄를 축복하실 수 없기 때문에, 교회는 동성결혼을 축복할 수 없다”고 공식 표명했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총회는 2019년 “성별 선택권과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조합”을 대중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철회하는 내용을 담은 ‘그가 창조한 남녀’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