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을 명하신 목적

오피니언·칼럼
칼럼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젠더 이데올로기는 해체주의를 목표로 전통적인 가정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다처, 혹은 다부일처라는 위협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거기에 동성결혼, 다부다처 결혼, 근친결혼, 더 나아가 애완동물이나 물건과 결혼하는 일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끔찍한 가정 해체의 거센 흐름은 결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문화막시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치밀한 전략과 오랜 활동의 산물이다.

문화막시즘의 초기 이론가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 중 한 명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다. 그는 구(舊)소련 붕괴를 바라보면서 공산혁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하게 됐다. 그는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막시즘의 실패 원인을 기독교 정신과 문명 때문이라고 판단했다(정일권, 「문화막시즘의 황혼」, (CLC,2020).p.48.). 때문에 그람시를 비롯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기독교 정신과 문명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가족제도, 결혼제도, 일부일처제, 성적 금기에 반항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정일권, 「문화막시즘의 황혼」). 한 마디로 가정을 철저히 해체시키는 것이 공산혁명의 환경을 조성하는 지름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들의 진단은 성경적으로 볼 때 옳았다.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 중심에 있으며, 가정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무참히 무너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바로 말라기 2:15이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처음부터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를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본 절은 하나님께서 ‘영이 충만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한꺼번에 여러 명을 창조하실 수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오직 한 남자(一夫)와 한 여자(一妻)만 창조하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는지 묻는다. 그 이유를 말라기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고 가르친다.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 다른 어떤 가정제도도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정(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창조하신 목적이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가정 해체의 이면에는 가정의 존재 목적이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라 생각하는 왜곡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왜곡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가정의 존재 목적을 개인의 행복과 만족에 두기 때문에 자연히 가정에 간음, 이혼, 성적 방종이 합리화된다. 가정의 행복과 만족 때문에 어떤 부부들은 행복을 위해 배우자 외에 애인 두는 것을 서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좀 더 나아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낙태나 자녀 유기, 출산 거부, 자녀를 애완동물로 대치하는 것 등이 정당화된다. 이 모든 끔찍한 죄는 행복추구권이라는 미명하에 합리화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어떤 분은 가정의 존재 목적이 행복과 만족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불편하게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을 불편하게 들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행복은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부합하게 존재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가정의 존재 목적이 아니라, 선물이다. 이는 마치 신체의 기관을 제 기능에 맞게 활용하며 살면 건강이 덤으로 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성경은 가정의 존재 목적을 무엇이라 가르치는가?

첫 번째로 가정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창세기 1:26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 즉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물론 남자와 여자 개별이 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여 한 몸을 이룸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세 인격이 하나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삼위일체 형상을 은연중에 반영한다.

두 번째 가정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 나라 경작(예배)을 하는 데 있다. 창세기 2:5에서 사람(가정)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땅을 갈 사람”의 필요를 염두에 둔 창조다(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이전 칼럼을 참조하라). 하나님은 애초부터 “땅을 갈 사람”으로 가정을 창조한 것이다. 아담이 외로워 보여서 행복을 위해 가정이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경작(예배)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가정을 이루면 비로소 행복을 선물로 얻게 된다.

세 번째 가정의 존재 목적은 말라기 2:15절 말씀처럼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에 있다. 경건한 자손은 경건한 가정(부모)을 통해 만들어진다. 오늘날 가정 해체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가정에서 경건한 세대를 만드는 데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신명기 6:4-9 말씀처럼 부모는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자신들부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를 위해 신명기는 부모의 “손목에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로 삼”을 것을 명령한다. 그 다음에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고 명령한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교회의 몫이 아니라 가정(부모)의 몫이다. 이렇게 양육된 아이들은 다시 가정을 이루어 외적으로는 예배에 힘쓰고, 내적으로는 경건한 세대가 번성하도록 하여 땅에 충만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자녀를 양육하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이런 가정의 존재 목적을 염두에 둔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가정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매우 크게 벗어났다. 정말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요즘처럼 가정 해체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가정의 존재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세상과 구별된 가정을 이루고, 세상과 다른 목적성을 가진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가정은 자연히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며, 세상은 이런 가정을 통해 정화될 것이다.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김민호